이 유형은 생략된 정보의 추리 유형과 함께 고전적인 문제에 속한다. 그만큼 글 전체의 전개 양상을 이해하는 능력, 논지 흐름에 따라 내용을 추리하는 능력 등 언어 능력의 핵심 요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예시유형
문맥과 논지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근거해 글의 순서에 맞게 문단을 배열하는 문제 유형.
●해법
/ci0008?순서를 무시한 채 글 전체를 정독해 중심 내용을 파악한다.
?큰 테두리에서 내용에 따라 단락들을 묶는다.
?각 묶음에 속한 문단의 선후 관계를 정한다.
?묶음 사이의 순서를 정한다./ci0000
●문제
다음 글의 내용 전개가 적절한 문단 배열은?
(가)수정란을 완벽한 생명체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을 마구 다뤄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배아 복제 실험을 마친 후 그 배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는 낙태 시술의 현장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이마를 맞대고 이런 모든 순간에서 절대로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생명체의 시작’을 논한다는 것이 공허한 일이며 그 공허하고 모호한 기준에 따라 생명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은 더욱 불합리하다.
(나)그렇다면 ‘생명체의 시작’은 과연 어디인가. 생명체, 즉 스스로 숨 쉬고 번식하는 독립적인 실체의 시작 말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는 하나의 수정란이 포도송이와 같은 세포덩어리가 되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둘로 갈린 후 완벽하게 정상적인 두 개체로 성장한다. 하나의 수정란이 세포덩어리가 되기 이전의 그들을 과연 두 생명체로 봐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하나의 생명체로 봐야 할지 참 애매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배아는 완전한 생명체로 보기 어렵다.
(다)‘생명체의 시작’을 얘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유전자로 환원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생명체란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란 유전자의 정보에 따라 만들어져 이 세상에 태어나 일정한 시간을 보내곤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하며 살아남는다. 생명의 역사는 한마디로 DNA라는 기막히게 성공적인 화학 물질의 일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은 이처럼 한 생명체의 탄생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DNA의 표인일 뿐이다.
(라)배아는 유전자가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중간 과정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가 생명 현상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주고 그 몸이 ‘의식’을 얻어야 비로소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한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특별히 완전하지 않은 신경계를 가지고 태어나는 동물이다. 그래서 만일 신경계가 ‘자의식’을 확립하여 하나의 완벽한 ‘영혼’으로 거듭나는 시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 어머니의 몸을 빠져나와서도 한참이 지난 후이다.
(마)이처럼 생명체의 시작을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생명은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시작은 DNA의 탄생과 때를 같이 한다. 그 태초의 바다에 떠다니던 많은 화학 물질들 중에 어느 날 우연하게도 자기 자신을 복제할 줄 아는 묘한 화학물질인 DNA가 나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년 동안 다양한 ‘몸’들을 만들며 살아온 것이 바로 생명의 역사다. 지금은 비록 인간의 몸속에, 그리고 개미와 은행나무의 몸속에 들어앉아 있지만, 그 모든 DNA는 전부 하나의 조상 DNA로부터 분화한 자손들이다.
(바)이런 점에서 생명이란 하나의 생명체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한계성을 지니지만,DNA의 눈으로 보면 태초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영속성을 지닌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의 경우에는 DNA가 복제된 후 몸이 갈라지기만 하면 번식이 이뤄지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자신의 DNA의 절반을 운반하는 난자와 정자를 만들고 그들이 서로 만나야 비로소 수정란이 된다. 난자와 정자도 생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들을 별개의 생명체로 보기는 어렵다.DNA가 가진 생명은 생명체에서 생명체로 이어진다. 난자와 정자는 연결고리에 불과하다. 생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생명체는 잠시 단절된다.
(1)나-다-라-마-가-바
(2)나-라-다-마-바-가
(3)다-나-라-마-바-가
(4)다-나-바-마-라-가
(5)다-라-나-마-가-바
●해설
각 단락의 중심 내용을 통해 순서를 재조직해 보면, 우선 (라)가 (나)를,(바)가 (마)를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마)의 ‘이처럼’이 (라)의 후반부의 내용, 인간이 생명체로 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마)의 중심 내용으로 이어주고 있다. 한편 지문이 ‘생명’,‘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체의 시작’을 논하는 것이 공허한 이유를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다)가 이 글의 화제인 ‘생명체의 시작’을 문제시하는 관점을 제시한 전제 단락에 해당하고,(가)가 이 글의 결론 부분에 해당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를 종합할 때 ‘다-나-라-마-바-가’의 순서로 정렬할 수 있으므로, 정답은 (3).
●김병구(숙명여대 교수/국문학 박사)
2005-10-13 0: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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