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10시 강북구청이 운영하는 삼각산문화예술회관. 매주 토요일마다 천연 비누를 사랑하는 ‘아줌마 군단’이 모여든다.
●삼각산 문화회관에 모인 주부들 눈동자 초롱초롱
구청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지만, 다들 비누에 대한 관심이 큰 탓에 수업에서 배우지 않은 비누도 만든다.
이 날은 ‘때비누’를 만드는 날. 말 그대로 때가 잘 나오게 하는 비누다. 준비물은 1ℓ짜리 빈 우유곽과 플라스틱 컵. 준비물 없이 갔지만 이것저것 빌려주는 ‘넉넉한 인심’에 비누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었다.
●코코넛 오일 섞으면 ‘때´ 몰라보게 말끔히
“때비누는 세정력이 뛰어난 코코넛 오일을 사용하는 기능성 비누지요. 기왕 하실거면 목욕탕에 직접 가서 사용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비누로 거품을 내고 15∼20분 동안 머리를 감은 뒤 때를 밀면 벅벅 나옵니다.”(문보경 강사)
누군가 ‘선생님이 목욕관리사 같다.’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비누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간 취지가 무색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겨울철 묵은 때를 벗겨내기에는 제격일 것 같았다.
본격적인 비누 만들기가 시작됐다.
빈 우유곽에 흰색 가루인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와 물(증류수)을 넣었다. 여기저기서 ‘켁켁’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성소다가 물에 녹을 때 연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단 통풍이 잘되는 창밖에 놔두고 기다렸다.
●천연 비누의 비밀은 글리세린
막간을 이용해 문 강사는 천연 비누의 장점을 설명했다.
“천연 비누의 비밀은 ‘글리세린’에 있어요. 비누를 만들 때 생기는 글리세린은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비누는 공정을 단축시키려고 글리세린을 제거하고 방부제, 유화제 등의 화학물을 넣습니다.”
이런 탓인지 비누 만들기 수업에 결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업중 만든 비누를 집에 가져가 쓸 수 있는데다 비누 제조법을 응용해 또다른 비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홍민희(33)씨는 “천연 비누를 쓰니까 피부가 훨씬 촉촉해졌다.”면서 “식구들끼리만 천연 비누를 쓰는 게 아까워서 주변에 나눠주곤 하는데, 주변에서도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비누를 만들 때마다 많이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옆 자리 오정실(48)씨도 “군대에 간 아들은 벽돌처럼 만들어도 좋으니까 매번 보내달라고 조른다.”면서 “라벤더를 보드카에 넣어 만든 스킨 등 화장품까지 만들어 쓰고 있다.”고 거들었다.
●비누 바꿔 아토피성 피부염 고쳤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컵에 오일을 넣고 데울 차례다. 오일을 ‘가성소다+물’의 온도까지 맞춰서 비누를 만들어내는 화학반응(그래픽 참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오일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섭씨 50도가 될 때까지 1분 넘게 돌린 뒤 ‘가성소다+물’에 천천히 넣으면서 걸쭉해질 때까지 돌렸다. 이게 식으면 드디어 비누가 되는 셈이다.
이 때 ‘수업의 맏언니’인 민순희(60)도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녹색가루’를 퍼주었다. 민씨는 “집에서 기르는 어성초를 빻아서 가루로 만든 것”이라면서 “아토피로 고생하는 며느리와 손녀가 어성초를 넣은 비누·화장품을 쓰고 난 뒤 많이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완성 4주 지나야 사용 가능
어느새 우유곽 속의 비누가 굳어져갔다. 틀에 붓고 건조시키면 모양대로 나오기도 한다. 완성된 비누를 보니 한방곡물을 넣어서인지 ‘쑥떡’ 같았다. 다만, 완성된 비누는 4주가 지난 뒤부터 사용할 수 있다. 가성소다가 화학반응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수업이 마무리되는 분위기에 접어들자 꼬마들이 한 두명씩 교실에 들어왔다. 이들은 엄마가 수업받는 동안 교실 옆 놀이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아랑곳 없었다.
“선생님, 녹차에 알부틴 넣으면 보습력이 좋아지나요.”“비누 냄새를 더 좋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비누가 상하지는 않나요…”.
수업은 1시간 30분만에 끝났지만 ‘학생’들은 천연 비누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모양·향·빛깔등 내맘대로 초보자는 ‘녹여붓기’ 적합
천연비누를 만드는 사람들은 비누 제조법을 ‘레시피(요리법)’라고 일컫는다. 비누 만들기가 요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릇에 넣어서 데우고, 녹이고, 원하는 재료를 넣고, 심지어 곡물·과일재료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누 만들기는 요리와도 같다. 재료의 종류와 양 에 따라 수많은 레시피가 있다.
비누의 기본 원리는 오일(지방산)과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염기). 두 성분은 화학반응을 통해 비누와 글리세린으로 된다.
오일은 코코넛·올리브·호호바오일, 동백유, 면실유 등이다. 심지어 돼지기름, 식용유로 만들어도 된다. 천연색소·식용색소를 넣거나 계핏가루, 코코아 파우더(갈색), 커피 분말(갈색), 카레 가루(노랑색), 당근즙(주황색), 숯(검은색) 등을 넣으면 색깔이 나온다. 라벤더·로즈마리·캐모마일·자스민 등의 향을 첨가해 향기를 내게 할 수도 있다. 또 율무, 녹두, 해초, 살구씨, 장미꽃잎, 알로에, 딸기, 자몽 등을 넣어도 된다.
비누 제조법은 크게 ▲녹여붓기 ▲저온법 ▲고온법 ▲재활용법(리배칭·Rebatching)으로 나뉜다.
특히 녹여붓기는 ‘기본형 비누’를 원하는 향기·컬러를 첨가해서 붓기만 하면 된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가성소다를 넣지 않아 초보자들도 만들기 쉽다. 특히 공룡·사자·호랑이 등 작은 장난감을 비누 속에 넣어 만든 비누는 아이들도 좋아한다.
이밖에 재활용법은 비누가 잘못 만들어졌거나, 모양이 만들어지지지 않을 때, 알뜰하게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저온법은 베이스 오일·가성 소다를 섞어 만들지만 끓이는 과정이 없다. 고온법은 물비누·투명비누·폼클렌저 등을 만드는 것으로 베이스 오일·가성소다로 만든 비누를 끓여서 중화시켜야 한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비누 매력에 홀려 과학교사서 직업 전환
“필요한 기능을 골라내서 ‘나만의 비누’를 만들 수 있지요.”
삼각산문화예술회관의 비누 만들기 강좌의 강사 문보경(36)씨는 비누의 매력에 반해 직업까지 바꿨다.
화학을 전공한 문씨가 처음 비누 만들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2년 과학 교사(강북구 번동중학교)시절.‘특별활동(CA) 시간을 어떻게 꾸릴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무심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학생들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비누 만들기다. 산성과 알칼리성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비누와 글리세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누를 만들어서 쓴다.’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기여서 정작 비누 만드는 법을 배울 곳이 없었다. 결국 아마존 닷컴 등에서 원서를 주문해 공부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위해 비누 만들기를 시작했지만, 정작 비누 만들기에 빠져든 것은 문씨였다. 녹차를 한꺼번에 넣은 비누를 만들어 사용했더니 뾰루지가 가라앉는가 하면 갖가지 형태로 나오는 비누들을 직접 보니까 신기하기도 했다.
수업이 없으면 과학실에 가서 실험하기 일쑤였다. 특히 한 종류의 비누를 50번 가까이 실패하면서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이듬해 학교를 그만두고 비누 만들기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비누를 만들면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몸과 마음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요. 앞으로도 참살이를 위한 비누사랑 전파에 앞장설 겁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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