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놀이터를 동심의 나라로
“늑대가 나타났어요~” 1일 마포구 망원1동 한마음 어린이공원. 회색빛을 띤 검은색 털에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늑대 한 마리가 등장하자 꼬마들이 소리를 질러댄다. 물론 ‘진짜 늑대’는 아니다. 하지만 쫑긋 선 귀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늑대 분장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이 때문에 어딜 가나 시선집중이다. 인형처럼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늑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신기해하며 재미있는 표정으로 늑대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다.●월~수요일 재래시장·골목길 누벼
지난 8월부터 망원동 일대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이 늑대는 월~수요일만 되면 재래시장과 골목길을 누빈다. 노인들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도 올린다. 동네 주변을 청소하기도 한다. 특히 늑대가 즐겨 찾는 곳은 마포구 한마음 어린이 공원의 정자. 이곳에서 책도 읽고 어린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마포구는 비행 청소년들의 집합장소로 인식되던 동네 놀이터가 상상력이 꿈틀대는 동심의 나라로 변신했다고 1일 밝혔다. 이같은 변신은 망원1동 동네 예술가들로 구성된 ‘동네놀이공작단’과 망원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하는 ‘주민참여 상상 놀이터 만들기 사업’으로 시작됐다.
이 사업은 지난 3월 서울문화재단의 ‘우리동네문화 가꾸기’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재단에서 지원받은 3500만원의 예산은 재료비 등으로 활용됐다. 지역주민 스스로 동네 놀이터를 창의적 공동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동네놀이공작단 단원이자 늑대 분장의 주인공인 조호연(32)씨는 “놀이터는 어린이뿐 아니라 세대 간의 만남과 통합의 장”이라면서 “주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상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 중 가장 인기있는 것은 바로 ‘책 읽어주는 늑대’. 이 늑대는 놀이터 한편에 있는 정자에 작은 도서관도 운영한다. 책은 100여권에 불과하지만 꼬마들은 늑대가 읽어주는 동화 속 세상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각종 공연과 생활속 공공미술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재활용 장난감 워크숍’도 호응이 높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어른과 어린이가 상상 속의 장난감을 만든다. 버려진 나무 조각을 활용해 상상자전거로 꾸미고, 형형색색의 빈 페트병을 모아 기상천외한 가면도 만든다. 공작단이 밑그림 그리기부터 톱질까지 제작법을 상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주민 누구나 참여하고 만들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의 사연을 재구성해 만드는 인형극 공연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4~6시 진행된다.
우리동네공작단은 3년째 망원동에서 공공미술을 통해 주민들에게 동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장실에 벽화를 그리고 마을 어귀에 텃밭을 만드는 등 동네 곳곳에 주민들과 함께 특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모두가 놀이를 통한 예술활동이다.
하영호(42) 단장은 “놀이터라는 일상 공간에서 어린이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매개로 주민들끼리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것도 예술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09-9-2 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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