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안 초안 들여다보니
‘첨단’과 ‘환경’, 그리고 ‘교육’….세종시는 이 세 가지 색깔로 칠해질 것 같다. 23일 정부가 전격 공개한 세종시 수정 방향의 뼈대다. 수정안 확정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임을 감안하면 큰 골격은 거의 이 초안대로 간다고 보면 될 듯싶다.
풀어서 말하면, 첨단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 생명공학, 디자인 관련 대학과 연구소가 있고, 이와 연관된 첨단 글로벌 기업이 있으며, 그 직원의 자녀들을 위한 수준높은 교육기관을 두루 갖춘 도시다.
신재생 에너지와 저탄소 에너지를 사용하고 각종 친환경 기술이 갖춰진 쾌적한 주택에서 자고 오염 없는 청정한 공기를 숨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 단계에서 한국이란 나라가 도시를 짓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와 기술, 열정이 집약된 인상이다.
이런 그림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개념이다. 미국의 첨단 IT 도시인 실리콘밸리와 교육도시인 보스턴, 과학도시인 독일의 드레스덴, 패션산업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밀라노 등이 가진 장점들만 죄다 뽑아 섞어놓은 느낌이다.
이 구상이 실현만 된다면 세종시는 불세출의 ‘명품 신도시’로 평가받을 것 같다. 수정안 추진으로 이반된 충청권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정부가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고 할 만하다.
특히 눈에 띄는 색깔은 ‘교육’이다.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등 ‘명품 고등학교’를 조기에 설립하고 외국학교를 세운다는 구상은 정부가 ‘세종시=자족도시’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마련한 회심의 카드로 보인다. 주중엔 공무원들이 세종시에서 일하고 주말엔 가족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버려 유령도시가 될지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세종시 원안이 가진 최대 약점이었다. 정부는 이 명품 고교 카드로 원안 고수론자들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듯하다.
초안은 또 세종시 원안이 확보한 용지면적 87만㎡가 자족도시를 위해서는 부족하다는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세종시에 그만큼 성의를 다하고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정부의 초안은 오히려 너무 화려한 명품 옷을 걸치고 있어 특혜 시비나 역(逆)차별 논란을 부를 법도 하다. 자립형 사립고 등 교육문제는 학부모 사이에 민감한 이슈인 데다, 기업 인센티브는 벌써부터 다른 지역을 긴장시키고 있다. 초안은 이를 의식한 듯 세종시의 기업 유치는 수도권에서 끌어오거나 아예 새로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다른 지역이 위축되는 효과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플러스섬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안 자체를 반대하는 야당과 수정안을 통해 불리함에 처하는 지역 등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정부는 국정최고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여론을 설득하는 정면돌파를 구상하고 있다. 수정안의 생사는 결국 향후 여론전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2009-11-24 12:0: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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