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급 역량평가 3인의 체험기
공직사회에 ‘역량평가’ 바람이 불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고위공무원단 승진 후보자에게만 실시하던 역량평가를 내년 말부터 과장급에도 전면 도입<서울신문 11월12일자 23면>할 예정이다. 이미 과장 승진 후보자를 대상으로 시범역량평가를 실시하는 등 본격적인 제도 마련에 착수했다. 역량평가는 실제 업무와 유사한 모의상황에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제도로 대다수 공무원에게는 생소한 평가 방식이다. 서울신문은 행안부에서 시범역량평가를 받은 서기관(4급) 3명으로부터 진행 방식과 체험기를 들어 봤다. 역량평가 때 수행했던 모의상황은 비공개(누설 시 형사처벌)여서 이들은 비슷한 예를 들어 후기를 전했다.●정확한 평가에 놀라
“평가자가 제게 ‘부하 직원 고충 상담을 할 때 지시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하더군요. 숨겨진 제 모습을 본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지만석(40) 행안부 고위공무원정책과 팀장이 역량평가를 받은 것은 지난 7월. 동료 5명과 한 조를 이뤄 6명의 평가자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지 팀장은 역량평가 시간은 한나절밖에 안 됐지만, 평가자가 정확히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냈다며 혀를 내둘렀다.
과장급 공무원 역량평가는 ‘1대1 역할수행’ ‘발표’ ‘서류함기법’ ‘집단토론’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 치러진다. ‘1대1 역할수행’은 평가를 받는 공무원이 과장이 됐을 때 겪을 만한 여러 모의상황을 준 뒤 평가자 1명과 함께 역할연기를 시킨다. 예를 들어 평가자가 부하직원 역할을 하며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면 다독여 줘야 한다.
모의상황은 30페이지가량의 문서로 돼 있다. 이를 읽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이후 20분간 역할연기를 해야 한다. 부하 직원 역할을 하는 평가자는 공무원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책상을 치기도 한다. 지 팀장과 함께 역량평가를 받은 조광래(52) 중앙공무원교육원 서기관은 “부하를 지나치게 다독여 오히려 업무 추진에 차질을 빚었다는 지적을 받았다.”면서 “하위직으로 오래 근무해서인지 은연중 결단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타당성 높기 때문에 도입
역량평가의 또 다른 영역인 ‘발표’ 역시 30분간의 준비시간을 갖고 20분간 평가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상관이 갑자기 병이 나 대신 세미나를 열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
‘서류함’ 기법도 모의상황을 받는 것은 비슷하지만, 해결책을 문서로 작성해 제출하는 게 다르다.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뿐인데 갑자기 세 가지 지시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 ‘토론’은 30분간 3명의 공무원이 모여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행안부가 역량평가를 과장급 승진에도 적용하려는 것은 현재까지 나온 여러 기법 중 가장 정확하게 능력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 따르면 역량평가의 타당성은 0.65점(1점 만점)으로 인성검사(0.39점)나 다면평가(0.23점)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은영(36·여) 행안부 정보화총괄과 팀장은 “역량평가를 치러 보니 여러 면에서 공정하게 능력을 측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평가에서 나타난 부족한 부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는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2009-11-25 12: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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