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지킴이’인 김지명(53·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81) 새시대구조봉사대 대장은 인명구조는 물론,등산객들에게 자신의 옛날을 반성하고 서로 돕자는 자작시(詩)가 적힌 엽서를 나눠주며 사랑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고아로 자란 전과 7범… 모두 10년 감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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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의 이름도 모르는 천애고아로 자라 전과 7범이라는 수렁에 빠졌다가 마음을 다잡고 1981년부터 24년째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출소한 뒤인 80년, “이제 다시 들아가게 되면 내 인생은 끝장”이라는 생각에 유서를 쓴다는 각오로 시작한 게 시작(詩作)이다.‘…/미워하는 마음이 있거든/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 주구려/…/작은 불행이라 할지라도 미련 없이/큰 장군바위 밑에 묻어 두구려/‘(관악산에 오시거든)
과천 쪽에서 관악산을 오르다 보면 초입 길 왼쪽에 새시대구조봉사대라는 간판을 단 나지막한 건물이 나타난다.
김 대장은 지난 날을 떠올리며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데 무려 20여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이제서야 진짜 사람다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학력이라고는 고아원에서 초등학교 2년 다닌 게 전부인 그는 전과자로 두말할 필요없이 사회의 냉대를 받았다.웬만하면 듣기만 해도 무서워할 ‘별’을 일곱 개나 달았다.
●마지막 출소뒤 시 쓰며 참회… 24년째 봉사활동
지금은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졌지만 아홉살 때부터 스물아홉살까지 감옥살이만 꼬박 10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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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명 대장이 최근 미국에서 실시한 로키산맥 구조대와의 합동 훈련에서 모의 인명구조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왼쪽두번째가 김 대장.
새시대구조봉사대 제공 |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스승이 둘,제자가 둘입니다.악한 스승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면 악한 제자가 탄생하고,선한 스승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면 선한 제자가 탄생합니다.저는 두 명의 스승이 가르치는 것을 과거와 현재를 통해 배웠던 것 같습니다.물론 현재는 선한 스승님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지요.”
김씨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범죄가 범죄만 낳는 게 아니라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고 여긴 재소자들이 출소한 뒤 인생상담을 위해 많이 찾아온다.별명인 ‘관악산 풍운아’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배 곯을 때도 폭력조직 유혹의 손길 뿌리쳐
79년 출소 때 반겨줄 사람이 있을 리 없는 그의 호주머니에는 세 끼니 밥을 사먹을 돈 몇천원뿐이었다.폭력조직에서 스카우트(?)의 손길도 뻗쳐왔다.그만큼 유혹도 컸다.‘전과자가 별 수 있겠나?’‘어딘가에서 돈 챙기려고 구조대 일을 한다.’는 등의 오해도 샀다.하지만 어둡기만 했던 과거를 정리할 요량으로 81년 5월 3범 이상의 전과자 60여명을 모아 사회봉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회봉사 덕택으로 86년에는 14세 연하인 부인(39)과 결혼,딸 해림(18)까지 낳았다.그러나 김씨는 92년 구조대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빠져들기 쉬운 범죄의 세계와 비로소 인연을 끊을 수 있었다고 되돌아본다.
품에 안기면 포근하지만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냉혹한 산처럼,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여산(如山)이란 아호도 지었다.관악산 초입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지킴이 역할을 하는 그에게 가장 보람찬 기억은 2002년 이맘 때 폭풍우 속에 길을 잃은 대학생 10명을 구한 일이다.
●조난 당한 대학생 10명 구한 게 가장 큰 보람
“사회가 어둡다,어둡다고 다들 걱정하기 때문에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래도 나 자신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알리고 싶습니다.80년대 초에야 겨우 새로운 삶을 출발한 점에 비춰 내 나이는 스물을 조금 넘긴 셈이지요.”
김씨는 형편이 닿으면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속속들이 담긴 29세까지의 삶을 정리한 소설을 ‘들개의 미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할 생각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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