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10시쯤 20∼30년생 소나무들로 빼곡한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덕실리 야산.
강릉시청 산림녹지과 공무원 조근영(29·산림직 9급)씨는 선배 박종환(43·산림직 7급)씨와 함께 죽은 소나무에서 시료를 채취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소나무 밑둥부터 두어곳을 톱과 손도끼를 이용해 손바닥만하게 시료를 찍어내고 있지만 죽어 바짝 마른 나무를 다루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인근 경포동 등 죽은 소나무가 신고 접수된 5곳을 오전중에 돌며 시료를 챙겨야 하기에 마음만 바쁘다.
지난달 19일 인근 성산면 금산리에서 소나무 에이즈병으로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발생하면서부터 산림직 공무원들에게 새로 생겨난 일이다.
조씨는 현장을 찾기 전에 맡고 있는 산지전용허가 업무를 해결하느라 오전 8시20분쯤 사무실에 나와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후다닥 일을 챙겨놓고 현장을 찾은 터이다.
시료채취를 끝내고 사무실에 다시 돌아온 시간은 낮 12시. 남들은 점심시간이라 여유롭지만 그렇지 못하다. 채취한 시료에 일일이 일련번호를 매기고 채취장소를 꼼꼼하게 정리한 뒤 도 산림개발연구원으로 택배를 보내고서야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오후 1시. 점심을 먹은 뒤 조씨는 이번엔 홀로 소나무 재선충병이 발생한 금산리를 찾았다. 더이상의 재선충병 번짐을 막기 위해 한창 벌채작업을 펼치고 있는 인부들의 독려에 나선 것. 벌목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고 벌채목 하산작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철저한 감시감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잰 발걸음을 놀렸다.“벌채목은 산밑으로 내리고 소나무 잎과 잔가지는 한 곳으로 모아 주세요.” “잔가지 하나라도 남겨 놓으면 안됩니다.” 인부들을 독려하는 조씨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재선충병 발생지역의 소나무들을 모아 놓았다가 수일내 톱밥으로 잘게 부수고 나무뿌리는 약품으로 훈증처리한 뒤 비닐로 밀봉해야 한다. 소나무잎과 잔가지는 현장에서 소각시킬 만큼 철저하게 해충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
벌채 현장을 뛰다시피 돌아보며 인부들을 독려하고 무단반출을 단속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3시. 이번에는 조경용으로 외지에 팔려나갈 소나무 굴취현장인 사천면을 찾았다. 생산확인표를 발급해주기 위해서다.
이달 9일부터 재선충병이 발생한 금산리지역 소나무는 반출이 전면 금지됐지만 다른 지역 소나무 반출에 대해서는 재선충병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일일이 현장에서 확인해야 외지로 나갈 수 있다. 또하나의 일이 생긴 것이다.
사천면에서 굴취된 소나무 7그루를 육안으로 꼼꼼히 살핀 뒤 현장에서 생산확인표를 발급했다. 반출 차량들이 도로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를 지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조경용뿐 아니라 벌목돼 나가는 목재용 소나무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검인도장을 찍어 내보낸다.
평소 같으면 하루 업무를 정리하는 오후 4시30분쯤.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시청사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산불방지를 위한 각종 업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튿날 있을 유급 산불감시요원 교육준비를 마치고 동료들과 거리를 돌며 ‘산불 예방에 힘씁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달초부터 가을산 불조심기간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사방이 어두워진 저녁 6시. 동료들과 또 시청 구내식장에서 조촐하게 저녁식사를 해결한 뒤 이번에는 성산, 왕산면쪽으로 차를 몰며 산불예방 야간 순찰활동에 들어갔다. 이날부터 처음 시작된 일인 만큼 유급감시원들이 근무를 잘하는지 읍·면·동을 돌며 챙겨야 한다.
저녁 늦게까지 야간 산길을 누비고 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밤 11시쯤.2년차 산림직 공무원 조씨의 피곤한 하루가 끝나는 시각이다. 조씨뿐 아니라 강릉시 산림녹지과 26명 전체 직원들의 요즘 일상이다.
조씨는 “숲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이는 힘든 일”이라면서 “그래도 소나무가 있고 숲을 지킨다는 보람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2005-11-12 0: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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