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엉덩이 소통의 흔적
서울 무교동 옛 대우조선해양 빌딩(현 하나은행 전산본부) 지하 아케이드로 향하는 계단 중간에 ‘엉덩이가 예쁜 여자’가 한 명 서있다. 나신으로 뒤돌아 선 모습이다. 살포시 무릎을 굽혀 엉덩이를 쭉 빼낸 모습이 요염하기까지 하다.1994년 12월10일에 태어난 그녀는 수많은 남정네의 흠모를 받아 왔다.“오랜만에 한번 만져 볼거나.”
얼큰하게 취한 직장인들이 그녀의 엉덩이와 가슴을 탐닉한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도 그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때문에 청록빛이 감도는 청동상이지만, 엉덩이와 가슴은 손때로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엉덩이는 수년간 쳐다봤지만 얼굴을 마주하기는 처음이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벽에다 귀를 대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요?’‘저 너머 다른 세계의 소리를 듣고 있어요. 벽으로 둘러싸인 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 저 아름다운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요.”
그녀는 저 너머 세상을 동경하고 있다. 몸은 화강암 벽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어느 새 그 세상에 닿아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라. 아름다운 머리채가 하늘로 올라가더니 저 세상과 통하는 창문까지 뚫는다. 그리고 저 너머 세계의 구름을 에워싼다.
작가 박헌열 서울시립대 교수는 “몸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마음은, 정신은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가슴 속에 품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작품이름이 ‘호기심’이다.
그녀는 세상에 귀 기울였지만, 우리는 그녀의 몸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녀가 외롭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직장인들이 엉덩이를 손쉽게 만지도록 작품의 높이를 조절했습니다. 삭막한 도심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며 잠시나마 즐거움을 느낀다면 저도, 그녀도 행복하지요.”
그래서 청동이 벗겨진 엉덩이를 손질할 계획이 없단다. 반질반질한 빛깔 그 자체가 이미 작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의 손길로 그녀의 엉덩이를 색칠해 보자.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7-2-28 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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