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7세… 노인들은 아직 ‘삭도차’라 불러
“오늘은 비가 내려서인지 서울 하늘이 조금 컴컴하구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서울에 큰 빌딩이 적어 하늘이 더 맑고 청명해 보였는데…”| ① 1980년대 당시 남산케이블카. ② 1962년 개통 당시 삭도차로 불리던 남산케이블카. ③ 2일 서울 남산케이블카가 관광객을 싣고 운행 중이다. 서울시 제공·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당시 돈으로 3억환(1962년 화폐개혁 이후 3000만원)이나 주고 모셔온 ‘귀한 몸’. 처음엔 사람들이 나를 ‘삭도차(索道車)’라고 불렀다. 아직도 몇몇 노인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회현동~남산 꼭대기 605m 운행
난 개통 후 사람들을 태우고 회현동 승강장에서 남산 꼭대기 사이(605m)를 오가는 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해왔다. 그렇게 50년 가까이 일하니, 어느새 한해 60만명을 나르는 국내 최장수 케이블카가 되었다.
난 서울의 발전상을 직접 보여주는 ‘모더니즘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비록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하늘을 날며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40~50대 중년인 친구들이 코흘리개였던 시절, 엄마·아빠 손에 이끌려 와서는 눈앞에 펼쳐지는 세운상가, 삼일빌딩 같은 고층건물에 놀라 소리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86년 ‘돌아이2’(이두용 감독)라는 영화에서 당시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던 가수 전영록이 남산으로 향하던 나를 타고 지붕 위에서 악당들과 싸우다,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케이블카 지붕 위로 뛰어 넘던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명장면으로 남은 것 아닌가.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나를 그리 반기지 않는 것 같다. 외국 여행이 자유로워진 뒤로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울 야경이 홍콩이나 도쿄만 못하다.”며 투덜대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래도 서울은 그런 도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다.
●2011년엔 에어카 도입
최근에는 나를 더 쉽게 탈 수 있도록 서울시가 경사형 엘리베이터인 ‘남산오르미’를 만들어 주었다.
남산3호 터널 앞에서 남산오르미를 타고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나를 갈아타면 된다. 어린 친구가 생긴 셈이다. 2011년이 되면 나보다 훨씬 편리하게 남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동생인 ‘에어카(곤돌라 리프트)’도 들어온다고 한다. 물론 그 때도 나는 일할 것이다. 남산 ‘터줏대감’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줄 게 뻔해 서운하긴 하지만, 서울시의 남산 르네상스 계획을 통해 역사와 전통을 복원해 가는 서울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내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도움말 서울 남산르네상스담당관 백현식 과장
2009-7-3 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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