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만점 지자체장 송년 건배사
신공항 염원 대구시장 “떴다 떴다 비행기”행정 철학형 서울시장 “현장이 답이다”
송하진 전북지사 독자권역 의지 “자존”
마·포·구, 중·랑·구 줄임말엔 위트 가득
“자신만의 색깔로 리더십 담으려는 시도” ‘2020(이공이공) 성공성공’ 서울 최대 인구(68만명)를 자랑하는 송파구의 박성수 구청장은 요즘 이 같은 송년 건배사를 한다. 일자리, 환경, 복지 등 자신의 모든 공약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과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송년회 건배사로 각각 자치구 이름인 ‘마·포·구’와 ‘중·랑·구’를 제창한다. ‘<마>포는 <포>기를 모릅니다. <구>민과 더불어 2020년에도 달리겠습니다’와 ‘<중>랑구의 힘찬 내일을 위해 <랑랑> 18세처럼 열심히 뛰겠습니다. <구>민과 함께 파이팅!”의 줄임말이다. 둘 다 내년도 정책과 사업을 대하는 다짐을 담은 건배사에서 패기와 열정이 느껴진다.
지자체 단체장들의 건배사는 행정철학, 도정 슬로건, 고향사랑을 담은 말들이 많다. 신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쥐어짠 흔적도 눈에 띈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건배사는 ‘떴다떴다’, ‘비행기’다.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이전이 탈 없이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만들었다. 후보지는 군위군 우보면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등 두 곳이다. 당초 예정된 기한인 2026년 개항까지 선정 및 건립 절차가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 권 시장이 ‘떴다떴다’라고 선창하면 다른 사람들은 ‘비행기’로 답하는 식이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건배’라고 짧게 하지만 제창 직전에 지역 발전과 함께 ‘전북의 자존’을 강조한다. 호남 속 전북이 아니라 전북 독자권역을 의미힌다는 설명이다.
원희룡 제주지사 건배사에는 고향사랑을 담았다. ‘도민과 제주도의 미래와 발전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술잔을 든다.
도정 구호나 슬로건을 건배사로 쓰는 단체장도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도정 슬로건인 ‘생명의 땅, 으뜸 전남’을, 최문순 강원지사는 도정 구호인 ‘평화와 번영, 강원시대’를 외친다. 휴전선을 낀 강원도답게 평창동계올림픽 때처럼 냉전구도를 깨고 평화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에 금강산 관광 재개와 남북 철도연결을 소망하는 마음도 담았다.
김경수 경남지사도 도정 슬로건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이 송년 건배사다. 경제·사회·도정 3대 혁신이 그의 핵심 정책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염태영 수원시장의 송년 건배사는 직책에 알맞게 ‘자치분권’이다. 염 시장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행정 전달자’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건배사는 초지일관 ‘현장이 답이다’이다. 20년 넘게 시민운동가로 최전선에서 뛴 ‘현장 베테랑’을 강조하는 마음이 묻어 있다. 박 시장은 “진짜 문제, 진짜 희망은 현장에 있다는 믿음과 의지를 건배사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의 송년 건배사는 재치가 넘친다.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김동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을 인용해 ‘산너머’, ‘남춘에서!’를 제창한다. 인천을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과 함께 초선인 자신을 알리는 효과도 있다.
반면 이시종 충북지사는 건배사를 자주 양보한다.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 도 관계자는 “국비확보에 애쓴 국회의원과 직원 등 도정발전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을 예우하는 것”이라며 “건배사 양보도 그의 성격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단체장은 1년간 일을 잘했다는 것, 전임 단체장과 차별화하고 싶은 마음, 리더십을 인정받고 싶은 속내와 함께 앞으로도 단결해 잘하자는 뜻에서 건배사를 하지만 단체장 본인의 실체와 맞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서울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9-12-23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