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랑스러운 아버지학교 동문’ 오후 2시 남현교회 2층 예배당.아버지학교를 이미 마친 ‘선배 아버지들’ 중 도우미를 자처한 30여명이 분주하게 움직인다.이들은 다니는 교회와 교파,사는 지역은 모두 다르지만 아버지 학교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누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온 스태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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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광명 아버지학교 졸업식장에서 김학면… 구로·광명 아버지학교 졸업식장에서 김학면씨가 딸 서연양을 끌어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서연양은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했던 아버지에게 사랑의 편지를 직접 낭송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오후 4시30분.구로·광명아버지학교 2기 수강생 90여명이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모이기 시작했다.같은 조에서 한 달이상 함께한 동문들에게 한주간의 안부를 물으며 밝은 웃음을 건넨다.아버지학교 수강생과 가족 160여명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자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와 신나는 율동으로 졸업식이 시작됐다.첫 식순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써온 러브레터 읽어주기.조별로 조장의 진행에 따라 조원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편지를 읽는다.
14조 공태희(33)씨는 남편 고재수(33)씨에게 읽어줄 편지를 꺼내자마자 눈물을 글썽인다.“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연애를 했고 부부가 될 때까지 한번도 변치 않고 날 사랑해줘서….” 한줄도 미처 못읽고 눈물부터 흘리는 공씨에게 남편 고씨는 아내의 편지를 대신 읽어주며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했다.
13조 예비아버지 윤충렬(29)씨는 뱃속에 있는 아이와 아내 김명자(27)씨에게 편지를 썼다.“이제 4개월된 뱃속 축복이에게…”로 운을 뗀 윤씨는 “이 세상에 온 내 아내와 내 아이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고는 결국 눈물을 글썽이며 아내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후 7시.예배당 조명이 어두워지고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아빠가 매일 마시는 술엔 아빠의 슬픈 눈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압니다.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편히 울지도 못하시는 것도 잘 압니다.”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서연(17)이는 이번 아버지학교 참가자인 김학면(47)·공이자(46)씨 부부의 딸이다.서연이는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신에게 써준 편지의 답장을 이날 졸업식에서 직접 읽어드렸다.무대 위로 달려나온 김씨 부부는 여러 차례 사업 실패로 방황했던 아버지를 보며 가슴에 상처를 받았을 딸을 끌어안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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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아버지학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인 … 두란노 아버지학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인 세족식.구로·광명 아버지학교 졸업식이 열린 지난 10일,개봉동 남현교회에서 졸업을 맞은 아버지들이 무릎을 꿇고 아내의 발을 씻겨주며 바른아버지·자상한 남편이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배모(40)씨는 아내 김모(40)씨의 발을 씻기며 “여보 용서해줘.”라며 그간 아내에게 말하지 못했던 미안한 감정을 토해냈다.지난 94년 결혼해 특별한 일자리도 없이 8년간 술만 마시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던 배씨는 2년전 아내와 이혼했었다.배씨는 아버지학교를 계기로 새출발하려는 자신을 믿어주고 다시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해준 아내가 고마웠다.
올 3월 유방암 선고를 받고 8차례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박영애(54)씨는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남편 정인하(61)씨를 끌어안고 “우리 행복하게 오래살자.”며 통곡했다.박씨는 너무도 힘겹고 지겨운 투병생활을 함께 버텨내려 아버지학교에 등록한 남편이 한없이 미덥고 고마웠기에 세상떠나는 그날까지 남편과 함께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세족식을 마치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깊이 그리고 오래도록 끌어안는 ‘허깅’을 마지막으로 졸업식은 끝이 났다.
2기 구로·광명아버지학교 스태프 대표를 맡았던 정재풍(40)씨는 “아버지학교의 가르침을 3개월 만에 잊는 사람들도 많지만 졸업식의 감동을 느껴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며 “졸업 후에도 바른 아버지가 되도록 스스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두란노 아버지 학교는
두란노아버지학교는 총 5주 과정으로 서울·수도권지역 23개 교회에서 토요일 오후 4시45분∼밤 10시30분 진행된다.매주 숙제가 주어지며 일주일 동안 숙제를 마친 뒤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아버지 학교를 이미 마친 변호사,의사,교사 등의 경험담을 1시간가량 듣고 난 뒤 조원간의 토론과 고백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교회 상황에 따라 한 기수에 80∼100여명을 선발하며 한 조는 8∼10명으로 구성한다.아버지학교 수료생 1명이 각 조의 조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하고 조원들이 전체 수업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돕는다.수강료는 10만원이다.
●첫째주 아버지의 영향력
나는 나의 아버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그리고 지금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인지 생각하는 시간이다.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내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했으면서 혹시 지금 나는 그 모습을 따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아내와 아이들에게 소황제로 군림하며 윽박지르거나 난폭하게 행동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조원들 앞에서 고백한다.
첫째주 숙제는 두가지다.먼저 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아버지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이나 아버지를 속상하게 했던 일 등을 쓰고 아버지에게 화해와 용서를 구한다.두번째는 자녀들에게 편지를 쓴다.자녀들에게 소홀했거나 부족했던 점을 적고 앞으로 자녀들에게 바라는 소망도 쓴다.
●둘째주 아버지의 남성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남성문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이다.당장 카드 연체료를 못내 쩔쩔매면서도 술자리에서는 폼나게 카드를 긁는 ‘체면문화’,결혼 기념일에도 아내의 생일에도 열심히 일만 하는 모습이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일문화’,술없이는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고 ‘사나이의 통은 술통과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음주문화’,여자를 몇명 거느리느냐로 남자다움을 평가하는 ‘섹스문화’,낚시과부,골프과부,테니스과부 등이 의미하듯이 남성중심의 ‘레저문화’,‘여자와 북어는 때려야 맛이 난다.’고 믿는 ‘폭력문화’ 등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자기가 살아온 방식을 반성한다.둘째주 숙제는 자녀와 아내에게 편지쓰기다.자녀와 아내가 사랑스러운 스무가지 이유를 직접 적어야 한다.
●셋째주 아버지의 사명
‘남자’라는 신분의 최고는 대기업의 간부가 되거나 수십억원의 재산을 가진 갑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됨’이라는 것을 가르친다.아버지는 자녀가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삶의 롤모델이 돼야하며 자녀들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셋째주 숙제는 자녀들과 일대일 데이트하기다.떡볶이 집,놀이동산,카페 등 적당한 장소를 정해 아버지와 자녀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넷째주 아버지의 영성
하늘이 이 땅에 보내주신 소중한 자녀를 내가 대신해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네번째 수업의 숙제는 아내와 데이트하기와 ‘인생사명서’ 쓰기다.아내와 연애시절 자주 들렀던 카페나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내를 사랑하는 스무가지 이유’를 직접 들려줘야 한다.또한 앞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내 아이들의 아버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다짐하는 ‘인생사명서’를 쓴다.
●마지막주 졸업식
다섯번째 주 졸업식에는 아내와 아이도 함께 참석한다.집에서 손수 준비해온 도시락과 과일 등을 조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로 나눠먹으며 아버지 학교와 각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졸업식에서는 아내와 남편이 서로에게 써온 편지를 읽어주고 아버지학교 5주 동안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한다.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남편은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내의 발을 씻겨주며 앞으로 바른 아버지와 바른 남편으로 살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아버지학교 세운 하용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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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
지난 1995년 10월 처음 문을 연 아버지학교는 온누리교회 하용조(58)목사와 뜻을 같이하는 몇몇 교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하 목사는 목회활동을 하면서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한 가정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느껴왔었다.그는 지난 93년 당시 온누리 교회 황은철(46) 부목사와 그의 부인 도은미(46)씨에게 이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고,신도였던 김성묵(56) 장로와 함께 이 고민을 발전시켜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갔다.
95년 용산구 서빙고동 두란노서원에서 교인 63명을 대상으로 과거 내 아버지의 모습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첫 세미나를 열었고 효과는 대단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정말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합니다.가정의 행복을 위해 나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고,술·담배 안하고 나쁜 짓 안 하고 가정과 회사밖에 모르는 훌륭한 아버지라고 생각한 것이죠.그러나 참된 아버지의 모습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 목사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아버지로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삶의 목표를 다시 세우는 감동적인 순간을 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았다고 한다.
교인들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아버지학교는 2년 만에 자리를 잡아 97년부터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 다른 종교를 가진 일반인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다.
아버지학교는 현재 서울·수도권지역에 23곳,전국 58곳,해외 12개국 45개 지역에 개설됐으며 지난 1월까지 8년 동안 3만 3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아버지학교를 마친 뒤 자발적으로 아버지학교의 도우미로 참여하고 있는 스태프만도 서울·수도권지역 1000여명,전국 3500명에 이른다.
하 목사는 “지금은 한발짝 물러나서 아버지 학교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을 뿐,아버지학교를 꾸려가는 스태프들과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오늘날 아버지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모든 아버지들이 최종학력을 아버지학교라고 적을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 학교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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