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잊어버리고 신나게 공부할 수 있잖아. 학생이란 자리가 너무 행복했어.”
지난여름 안양에 사는 할머니는 여동생 양순(63)씨에게 전화를 받았다.“관악시민대학에서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함께 등록하자.”는 얘기였다.
관악시민대학은 관악구가 서울대학교와 협력해 추진하는 평생교육사업. 서울대 조영달 사범대학장, 권오현 학생부학장, 박효종 교수, 진형혜 변호사, 성악가 임성규씨 등 각계 저명인사가 강의를 맡는다.
동생의 제안에 유 할머니의 향학열이 꿈틀거렸다.6·25전쟁을 앞두고 피란온 할머니는 늘 배움에 목말랐다. 일간신문 2개를 매일 정독하고,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유창하게 구사했지만 ‘대학생이 되는 꿈’이 떨쳐지지 않았다.
기회가 온 것이다. 유 할머니는 우선 주소를 신림동 동생 집으로 옮겼다. 시민대학에 누구나 입학할 수 있지만, 관악구민을 먼저 선발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지난 9월3일 최고령자로 입학했다. 매주 수요일 관악구평생학습센터에서 2시간 강의를 받으려고 안양에서 버스를 3번 갈아타고 달려왔다. 통학시간만 3시간이 넘었다. 관절염으로 수술받은 두 무릎이 아플 때면 동생 집에서 잠을 청했다.
“매주 다른 교수님이 와서 강의를 하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귀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에 와 닿아서 힘든 줄 몰랐어.”
이북합창단원으로 15년째 활동하는 터라 황준연 교수의 ‘전통 음악의 멋’과 성악가 임성규 교수의 ‘우리가곡 부르기’가 좋았다. 6일 수료식에서 학사모를 쓴 유 할머니는 시민 대학생활을 “꿈 같은 시간”이었다고 되새겼다. 대학원에도 진학할 계획이다. 이미 서울대에서 운영하는 6개월 과정의 관악시민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언제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공부하라.’고 용기를 북돋워 줬거든.”
할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유 할머니는 학생으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6-12-8 0:0:0 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