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천500억원 소요…행자부 폐지 권고에도 지자체 “인사적체 해소” 소극 “30년 넘게 근무하고…국민 정서에 안 맞는 구시대 유물” 비판 목소리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에도 23년째 꿋꿋하게 유지되는 공무원들의 ‘공로연수제도’가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성과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성과연봉제 공공기관 도입이 화두가 된 마당에 출근조차 하지 않고 월급을 챙기는 공로연수제가 존속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공무원의 사회 적응을 돕는다는 취지로 도입된 공로연수제는 공식사회 내부의 인사적체 해소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달리 30년 넘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도 공무원직을 유지한 채 최고 1년간 쉬면서 월급을 받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원하는 공무원들에 한해 선별적으로 시행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았지만 일선 지방자치단체 반응이 시큰둥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 작년 전국 지자체 공로연수자만 2천867명…소요 예산 1천500억원
공무원 공로연수제도는 정년퇴직을 6개월∼1년 남겨둔 공무원에게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1993년에 도입됐다.
관련 규정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예규로 정했다. 시행 여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맡겼다.
일선 지자체는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은 직원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의무로 여겼다.
30일 행자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국 지자체에서는 공로연수에 들어간 인원은 2천867명에 이른다. 공로연수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정부 부처나 시·도 교육청을 제외한 시·도와 시·군·구만 취합한 규모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천39명으로 가장 많고 전남(303명), 경북(192명), 충남(167명), 부산(145명), 경기(136명) 등이 뒤를 이었다.
공로연수자는 지자체별 자체 계획에 따라 민간 교육훈련기관에서 합동연수를 받는다.
공로연수 기간에는 특수업무수당과 위험근무수당 등을 제외한 보수가 전액 지급된다. 영어나 컴퓨터 교육 등 민간 연수기관에서 받는 교육 훈련비도 지자체가 전액 지원한다.
이렇게 공로연수자에게 소요되는 예산은 매년 차이는 있지만 연평균 1천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앙부처나 교육청까지 합하면 공로연수 소요 예산은 훨씬 늘어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이 퇴직 연령에 접어든 것을 고려하면 공로연수 대상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놀고먹는 제도’ 비난 고조…지자체, 인사적체 해소 위해 고수
문제는 이런 공로연수제도가 도입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자부 예규는 공로연수 기간 교육훈련기관 합동연수를 60시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당사자 재량에 맡기다 보니 실제 연수를 받는 공무원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집에서 쉬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월급은 꼬박꼬박 나온다. 명예퇴직보다 조건이 좋다. 명예퇴직과 비교할 때 1년간 공로연수를 하면 총액 기준으로 적게는 800만원(5급), 많게는 1천800만원(3급)까지 보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뚜렷이 하는 일도 없는 공무원들에게 상당액의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공로연수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인사적체 해소 효과 때문이다.
공로연수는 인사상 파견근무에 해당해 결원을 보충할 수 있다. 즉 퇴직을 1년 앞둔 공무원이 보직을 내놓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면 다른 공무원들의 연쇄 승진이 발생한다.
선배 공무원이 공로연수에 들어가지 않으면 후배 공무원의 승진이 6개월에서 1년가량 늦어진다.
결국 퇴직 전 사회 적응 준비 기간을 준다는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내부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정년퇴직까지 6개월∼1년이 남은 공무원을 강제로 밀어내는 수단으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 행자부 개선책 실효성 의문…공로연수제 폐지론 부상
공로연수제도가 인사적체 해소 수단으로만 비치는 데 부담을 느낀 행자부는 지난 3월 공로연수 대상자를 선정할 때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받도록 지침을 변경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다 보니 행자부 지침을 무시하고 지금처럼 사실상 의무적으로 공로연수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행자부 예규상 지침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공로연수제를 중단하면 인사적체가 더욱 심화해 공무원의 사기가 꺾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공로연수제도를 자체적으로 폐지한 지자체에도 문제는 있다.
2014년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공로연수제도를 폐지한 충남 당진시의 경우 퇴직 1년을 앞둔 공무원이 요직에서 복지부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사적체에 불평을 늘어놓는 내부 반발도 많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집단과 시민사회단체는 제도 폐지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구시대적 제도는 폐지하되 공직사회에도 임금 피크제와 같은 민간 기업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퇴직을 앞둔 고위직 선배 공무원을 현업 부서에 배치해 후배 공무원의 인사 불만을 최소화하는 등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요즘 같은 경쟁 시대에 놀면서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직사회가 내부 편의를 위해 당초 목적을 상실한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충북지방자치학회장을 지낸 남기헌 충청대 교수는 “시대가 변했고, 공무원 보수 수준도 민간 수준만큼 오른 상황에서 과거의 후생복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퇴직 공무원의 사회 적응을 돕는 게 목적이라면 퇴직 직전에 교육할 것이 아니라 재직 중에 틈틈이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수제도를 마련하고, 그 결과가 행정 과정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