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 주도 ‘3·5·5+농축산물 10만원’ 청탁금지법 개정안… 엇갈린 속마음
경기 북부의 한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8급 공무원 김모(31·여)씨는 최근 근심거리가 하나 생겼다. 내년 3월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는데, 정부가 내년 설 전까지 청탁금지법에서 허용하는 경조사비 한도액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예식장 식대가 6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축의금 5만원을 받아도 식대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본전 생각도 든다. 여태껏 동료 공무원들에게 보통 축의금을 10만원씩 냈는데, 자신은 5만원만 받을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동료 사이에는 경조사비 상한액 규정이 적용되지 않지만 축의금 지침처럼 작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축의금 대부분이 5만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씨는 “축의금 상한액이 5만원 줄어든다고 해서 큰 차이 있겠느냐마는 마음 한편에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 “예식장 식대가 6만원인데… ” 일부는 난감경조사비 상한액을 5만원으로 낮추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이는 이낙연 국무총리다. 박은정 권익위원장은 애초에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인 ‘3·5·10’ 규정을 고칠 생각이 크지 않았다. 청탁금지법이 지난해 9월 시행된 이후 1년이 갓 넘은 시점에서 상한액 규정을 수정하면 청탁금지법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7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추석이 다가온다는 이유로 특정 직종 부진 등의 관점에서 가액을 조정한다면 새 정부의 반부패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고 국가의 청렴 이미지 제고에 손상을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총리에게 청탁금지법 개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달 권익위에 제출한 ‘관련 업종 경제적 영향 연구’를 근거로 들었다. 청탁금지법이 우리 경제에 단기적으론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론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한우·화훼·음식점 등 영향업종의 파급 효과 때문에 총생산은 9020억원, 총고용은 4267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총생산의 0.019%, 총고용의 0.015%에 불과하다. 당시 핵심 쟁점은 농축수산물의 선물 한도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안이었는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은 선물액 한도를 1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농축산물 선물 확대·경조사비 축소 제안 수용
이 총리는 회의 당시 한 참석자가 제안한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리는 대신 경조사비를 5만원으로 낮추는 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경조사비 상한액을 낮춤으로써 청탁금지법 취지를 강화할 수 있고, 논란이었던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리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도 희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조사비 상한액 10만원은 부담이 된다는 설문조사도 영향을 미쳤다.
행정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조사를 보면, 경조사비를 낮춰야 한다는 일반 국민 의견이 18.3%, 적정 의견이 72.2%,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8.8%였다. 경조사비 상한액 조정 시 금액 기준을 보면 일반 국민은 5만원으로 낮춰야 한다가 82.2%, 5만원 이하가 9.3%, 7만원이 8.5% 순으로 나타났다. 이 총리는 지난달 17일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3·5·10 규정을 ‘3·5·5+농축수산물 10만원’ 규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권익위 전원위원회의 두 차례에 걸친 격렬한 논의 끝에 전원 합의로 의결됐다.
# “현금 5만원+화환 5만원 가능 청렴 강화” 환영도
실제로 경조사비 상한액을 5만원으로 낮추는 것을 환영하는 공직자들도 많다. 그간 경조사비로 10만원을 내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상사가 아닌 동료나 부하 직원의 경우 경조사비 상한액 기준이 적용되지는 않지만,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언론을 상대해야 하는 공보 담당 공무원들도 반기고 있다. 경조사비 상한액은 5만원으로 낮아졌지만, 조화나 화환은 여전히 추가로 5만원 내에서 보낼 수 있어서다. 권익위는 경조사비 상한액을 5만원으로 낮추는 대신 추가로 5만원 범위 내에서 화환과 조화를 할 수 있도록 규제에 여유를 뒀다. 권익위 관계자는 “농축수산물을 배려하면서 국민에게 부담이 큰 축의금과 조의금 상한액을 낮춰 공직자의 청렴의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 경조사비 가액 범위를 낮췄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7-12-18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