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자락 마포구청에서 만난 박홍섭(63) 구청장은 자신의 이야기는 ‘기사거리’가 될게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6·25가 발발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읜 박 구청장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와도 같은 평생의 스승 고(故) 서기원(徐基元) 선생을 만났다.
서 교장은 숭문 중·고등학교의 기틀을 닦은 분으로 한국 사학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
“사부(師父)로 모셨어요. 내 평생의 지침이 돼 왔던 사생취의(捨生取義)란 말도 그 분으로부터 배웠고, 크고 작은 일에 대해 항상 명확하게 시비를 가려주셨던 현명한 분이셨죠.”
‘사생취의’란 의로움을 구하기 위해 목숨도 버린다는 뜻. 박 구청장은 서슬퍼렇던 시절 험난한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던 것도 모두 ‘사생취의’란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법대에 진학했지만 고시공부보다는 노동법 공부에만 열을 올렸어요. 사부의 말씀과 내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의로움’이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당시에는 ‘노동’이란 말만 꺼내도 ‘빨갱이’ 취급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죠.”
박 구청장은 ‘사생취의’를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무엇인지 아는 게 더 어렵죠. 이것이 독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진정한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죠.”
박 구청장은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구청공무원의 승진에 ‘책읽기’를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적극적인 대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공무원들에게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필요하고, 그 능력을 배양시키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수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최인훈의 ‘광장’,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 등이 재밌게 읽었던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인식이 바탕이 돼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신념이죠.”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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