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법무부는 이미 호주제를 폐지하기로 하고 민법의 관련 조항에 대한 개정 작업에 착수,1인 1적제를 근간으로 하는 새 신분등록제를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민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호주제는 시한부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는 세계에서 드물게 호적 제도를 유지해 온 나라였다.
호주제 폐지는 남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가 가족 개념을 붕괴시킨다는 이유에서, 비록 폐지하기로 결정됐다고 해도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곳곳에서 들린다.
호주제도 폐지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명분과 이유를 살펴본다.
지난해 12월15일 서울역 광장에서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끼로 목을 쳐달라는 뜻으로 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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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는 가(家)를 규정함에 있어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를 말한다. 민법 제4편(친족편)에 호주제의 근간이 규정되어 있으며 절차법으로 호적법이 있다. 호주제도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의 출생, 혼인, 사망, 입양, 파양 등 모든 신분 변동 사항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가 호적이다. 편제 방식은 하나의 호적에 가족 모두의 신분 변동 사항이 기재되며 편제의 기준은 ‘호주’이다. 즉 가족원 모두 호주를 중심으로 상호 관계를 기재한다.
●“호주제 폐지 마땅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호주제폐지운동본부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미혼인 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 순위를 규정하고 있다. 아들을 1순위로 하는 이 제도는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감정을 내포해 남성이 모든 여성에 우선하며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있다.
둘째, 혼인한 여성의 남편호적 입적 및 자녀의 아버지 호적 입적은 여성을 남성의 예속적인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녀라도 호적을 함께 할 수 없다. 전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을 하면 자녀의 성을 재혼한 남편의 것으로 변경할 수 없어 혼란을 겪는다.
셋째, 남편은 처의 동의없이 혼인 외 자녀를 입적할 수 있지만 처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은 부부평등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넷째, 자녀의 성과 본을 아버지의 성과 본으로만 인정한다는 규정은 모계혈통을 무시하는 여성차별의 핵심적인 조항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부계혈통만을 인정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해 놓은 나라는 없다.
●헌법불합치 결정 사유
우리 헌법은 혼인의 남녀동권을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함으로써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용인하지 않고 있고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혼인을 하더라도 남자는 자신의 가(家)에 그대로 머물거나 법정분가하면서 새로운 가의 호주가 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의 가를 떠나 남편이 속한 가 또는 남편이 호주로 된 가의 가족원이 될 뿐이다. 부부는 혼인관계의 대등한 당사자임에도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종속적 관계가 정착된다.
모와 자녀가 현실적 가족생활대로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비정상적 가족으로 취급됨으로써 겪는 불편과 고통은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회문제이다.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지난 2003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여성 축제. 여성들은 남녀평등을 저해하는 호주제 폐지를 요구해 왔으며 현재 호주제 폐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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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에 따르면 호주제가 폐지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이렇다. 호주제란 가(家)라는 개념이 선후대를 통하여 계속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녀에게 선조의 성씨를 붙이며 제사를 지내고, 연결된 일족을 일가(一家)로 부르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가 간의 연결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을 호주라 이름지은 까닭으로 이러한 가족제도 전체를 호주제로 부르고 있으나, 이는 가족공동체 제도에 다름 아니다.
호주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호주를 통하여 연결되던 집안과 족보와 종중 및 선산과 시제를 모두 폐지하는 것이며, 법률상으로는 가(家), 호주 가족이라는 용어를 삭제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일가(一家)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게 되며, 심지어는 가족이라는 말의 뜻조차 모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폐지론자 중에는 첩, 사실상 동거자, 동성애 동거자 등을 모두 가족으로 본다는 이도 있다.
가계계승을 남계로 하는 데에는 과학적으로도 이유가 있다. 자녀는 부모의 유전자를 반씩 받으나, 손자녀는 조부모의 유전자를 4분의1씩이 아니라 최대 2분의 1, 최소 0의 범위 내에서 확률상으로만 받게 되어 손자녀부터 조부모의 유전자를 가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멀어지면 결국 선후대는 유전자 상으로 연결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남계혈통의 Y염색체만은 1만대를 내려가더라도 계속 유지되어 과학적으로 남계혈통의 근거가 되고, 검색도 가능하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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