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문로 성북구청 1층 종합민원실. 출생·사망신고 창구 뒤편에 유씨가 앉아 있다. 그는 호적부 정리를 맡고 있는 14년차 공무원이다.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를 하나하나 살펴 보며 컴퓨터에 입력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유순덕씨는 양궁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장애인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그는 ‘차가운 여궁사’와 ‘다정한 공무원’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그는 “외향적인 성격인데도 양궁할 때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매서워진다.”고 웃었다. 우연한 기회에 양궁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11월 천안 장애인 양궁친선경기를 구경하러 갔다가 국가대표 조현관 선수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울에서 훈련을 받던 조 선수가 기본기를 가르쳤다. 팽팽한 활시위를 당기려면 근력강화 훈련은 필수. 공무원 생활로 바쁜 유씨는 구청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루에 300개씩 하며 기초 체력을 다졌다. “처음에는 창피했죠. 시간도 없고 잘하고 싶은 투지가 불타 주위의 시선을 모른 척했어요.”
밤에는 워커힐 회관 연습장에서 나홀로 연습을 거듭했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과녁이 어른거리면 일어나서 미니 활로 자세를 잡았다. 주말에는 여주, 철원, 인천 등을 돌아다니며 실업팀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유씨의 열정에 탄복한 여주군청 백운기 감독이 자세 교정에 많은 도움을 줬다.
지체장애 2급인 딸이 전국을 헤매자 어머니가 반대하고 나섰다. 활 화살 등 장비를 갖추느라 200만원을 투자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유씨는 도전을 멈출 수 없었다.
“흐트러지는 나를 바로잡고, 정신을 집중해 화살을 쏘아 올리면 과녁에 명중합니다. 이 때 느끼는 전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아들 안성호(8)군은 훈련 원정에 동행하며 엄마의 다리 노릇을 했다.
지난 4월 대한장애인양궁협회가 제9회 쿠알라룸푸르 아·태경기대회 양궁국가대표 선발전을 열었다.23명이 참가한 예선전을 유씨는 가볍게 통과, 본선 1차전을 2등으로,2차전을 3등으로 마무리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새로운 꿈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고 있다. 그는 “국제경기는 처음이지만 메달을 꼭 따고 싶다.”고 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김명국 기자 daunso@seoul.co.kr
2006-8-25 0:0: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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