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해 적발된 건수가 벌써 43건에 이르고 있다.지방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공무원들의 불법행위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게 선관위 설명이다.
공무원들이 선거철에 줄서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누구를 지지했느냐에 따라 ‘자리보장’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특히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고위간부들은 누가 당선 가능성이 많은지,자신의 공직생활 마지막을 챙겨줄 후보가 누구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방 자치단체장은 공무원의 승진은 물론 보직 부여,출연기관장 임명같은 인사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이는 공무원들이 경쟁적으로 줄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무원 줄서기는 논공행상식 선심성 인사,아니면 보복성 인사를 낳는다는 점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암적인 존재로 지목받고 있다.
●노골적인 단체장 홍보
지난 22일 경남 진주시 신 모(55·5급) 과장과 이 모(53·5급) 동장 등 2명이 현 시장에 대한 선거운동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이 동장은 지난 1월 18일 관변단체 월례회에 참석,“우리 시장 다시 출마한다.시장만큼 일 잘하는 사람 없다.우리 동에서 몰표가 나와야 힘이 실린다”며 진주시장을 노골적으로 홍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 과장은 지난해 8월께 “나이도 많은 사람이 두번 했으면 됐지 3선은 욕심”이라는 등 진주시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자 ‘숙지 후 파기’란 글귀가 적힌 『지역민심 적극 대응조치』란 제목의 대외비 문건을 만든 뒤 “행사 때 적극 홍보하라”며 읍·면·동장에게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11월 열린 읍·면·동장 워크숍에서 “통·반장을 최대한 활용해 아파트와 경로당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노하우를 집결해 6.2 지방선거를 승리 축하잔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선거사례를 발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 2일 경남 밀양시 공무원인 도 모(57.6급)씨는 시장의 당선을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경찰에 구속됐다.
도씨는 지난 1월 6일 밀양시내 한 주민센터에서 지역 통장에게 “현 시장이 시정을 잘하니까 이번 선거에서 한번 더 지지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지난해 12월말부터 올해초까지 수차례에 걸쳐 현직 시장을 위해 직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간접 홍보도 극성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현직 단체장의 인지도나 지지도를 높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남 함안군에선 지난달 10일 모 면장이 이장 37명에게 “지역방송에서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방송되니 많은 시청 바람”이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가 선관위에 적발됐다.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현직 단체장의 활동 내용을 소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경기도에서는 지난해 7월에 모 지역 시민회관 소공연장 1층 로비 벽면에 걷기대회에 참여한 현직 시장의 대형사진을 설치한 공무원이 선거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전남 모 자치단체의 S동장은 지난 2월 관내 여론동향을 이메일을 통해 보고하면서 시장 후보들의 움직임도 함께 보고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S동장이 보낸 ‘시장출마 예정자 여론조사 결과 반응’이란 제목의 이메일은 “주민들이 행정의 연속성을 위해 반드시 (현 시장)이 재선되어야 한다.주민들이 현 시장의 시정철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가족동원 눈도장 찍기도
대전에서는 시청 일부 간부 직원이 출연기관장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을 유력 후보군의 행사장에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일종의 ‘보험’인 셈이다.일부는 유력후보 소속 정당에 당비를 내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당 관계자는 “최근 한 유력후보의 출판기념회에서 시청 간부직원 부인이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보험 차원에서 부인을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일부 시교육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지역의 현직 교장 등이 근무시간인데도 모습을 나타내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의 본분을 저버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줄서기 근절방안은
송재봉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재 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은 불법이지만 음성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제도로 규제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선관위가 일정한 원칙을 세워 철저히 감찰하고 처벌을 강화하면 공무원들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재일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선거에서 현역 단체장 등 유력후보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단체장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인사권을 제한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황상인 경남도선관위 주무관은 “공직사회 내부의 암묵적인 선거 개입을 막기 위해선 내부 고발자에 대한 신분보호 대책과 포상금 지급 등의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선관위 회의실에서 행정안전부와 대검 등 7개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공무원의 줄서기와 줄세우기에 대해 적극 대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선관위는 공무원의 줄서기 등 불법선거 관여 행위가 인사상 특혜에서 비롯되는 만큼 전보 또는 포상금 지급 등을 통해 내부고발을 유도하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 등 불이익 처분을 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해 내부고발자에 대해 최대 5억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 내부고발자가 신분 노출로 소속기관에서 계속 근무하기 어려울 경우 기관간 전·출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공무원의 줄서기가 극성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무원의 선거범죄에 대해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처벌기준을 적용하고 소속 기관장에게 위반사실을 통보해 징계를 요구하는 한편 행정안전부 및 교육과학기술부의 평가에 반영해 페널티를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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