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에게 여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더위 탓에 집중력도 낮아지는데,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사법시험·행정고시 2차 시험이 모두 끝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신림동 고시촌에도 때아닌 ‘여유’가 찾아왔다. 이런 여유가 가장 괴로운 사람들은 일찌감치 고배를 마신 1차 탈락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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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차 시험에서 떨어진 행시 수험생 조모(25·여)씨는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친구들보다 면접시험을 준비하는 동료 수험생들이 더 부럽다.”면서 “목표를 잃어버린 지금이 너무 힘들다.”며 울상을 지었다.
‘부러움의 대상’인 2차 응시생들도 애가 타기는 매한가지다. 행시·사시 합격자 발표는 각각 10월15일과 28일이다. 필기시험 때보다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면접도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다.
보통 2차 합격자의 30%가 탈락하는 행시뿐 아니라 면접이 통과의례로만 여겨졌던 사시에서도 지난해 면접 탈락자가 22명이나 나오는 등 면접과정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차 응시생들은 너도나도 면접 스터디를 구성해 치열한 준비를 한다.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추려 보고 카메라를 동원해 자신의 모습을 녹화한 뒤 팀원들과 함께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5~6회에 30만원선인 학원가 3차 특강을 활용하기도 한다. 사시 수험생 김민수(28)씨는 “실제 면접시험까지는 두 달 넘게 남았지만 여유를 부리다간 뒤처지게 된다는 생각 때문에 뭐라도 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반면 늘어난 시간을 활용해 돈도 벌고 공부도 하는 ‘실속파’ 수험생들도 있다. 사시 수험생 성모(29)씨는 최근 운 좋게 고시원 총무 자리를 얻었다. 20만원짜리 방 한 칸에 월급 80만원을 받아 생활비 걱정을 덜게 됐다.
하지만 성씨 또한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수험생들에게 이 계절은 합격으로 가기 위한 ‘가장 긴 인내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성씨는 “인내와 노력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지만 이런 생활을 한 해 더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털어놨다.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2010-07-2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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