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환지방식 고수·포기’ 결정 못하고… 강남구는 “공영개발 결단을” 호소문
19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렇게 되뇌었다. 1100여가구에 2104명이 거주하는 이곳에선 109명으로 구성된 토지주가 대지의 91%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국가와 서울시, 강남구 소유다. 대부분 가구의 한 달 수입이 100만원을 넘지 못한다. 전체 면적은 축구장 41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28만 6929㎡(8만 6948평)다.
지난 4일 서울시가 개포동 567-1 구룡마을의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해제한 뒤 보름을 넘겼지만 어떤 행정 절차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구룡마을 판자촌 주민들과 강남구는 빠른 진행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내놨다. 강남구는 이날 서울시가 환지방식을 접고 공영개발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구 관계자는 “계룡마을에 거주하는 2500여명의 주거 안정을 감안할 때 구룡마을 개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조속히 환지방식을 완전히 접고 100% 공영개발을 결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연희 구청장은 ”감사원 감사 결과 법적, 절차적 하자와 토지주 특혜 의혹 등이 사실로 밝혀짐에 따라 환지방식에 의한 사업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고 맞섰다. 주거 안정과 강남 세계화 요구에 부응하는 구룡마을 현대화를 미룰 수 없다는 얘기다. 구룡마을 거주자들에게는 “더 이상 ‘내 집 마련’ 운운의 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주거를 보장할 정부 주도의 공영개발 추진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본래 시는 구룡마을 토지를 모두 수용·사용방식(현금보상)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지만 2012년 사업비 부담을 들어 환지방식(토지보상)을 일부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구는 토지주에게만 특혜를 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토지주는 보상받은 토지에 상가 등을 지어 영구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2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시와 구는 지난 15일간 어떤 공식 접촉도 없었다. 양측이 합의할 경우 3개월 정도면 개발을 시작할 수 있지만 실무선의 협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아직 환지방식을 포기할지 고수할지도 내부에서 결정하지 못한 터라 합의 일정을 말하기는 이르다”고 털어놨다. 개발 표류 장기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14일 거주자 모임인 구룡마을자치회는 개발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이영만 자치회장은 “화재나 수해에 대한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불안만 자꾸 커지는 데다 주민 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며 “외부 시민단체들의 접촉도 계속되고 있어 외부 세력이 들어오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은 ‘제2의 용산 사태’를 원치 않으며 신속히 대체 계획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