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시와 SH공사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 소위원회는 지난 1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의 경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세운4구역 주상복합 건물 계획안을 반려했다. 이번이 벌써 4번째다. SH공사는 지난해 9월 36층 122m 높이의 계획안을 처음 냈다 반려된 이후 110m, 106m로 수정안을 계속 제출했다. 특히 지난달 29층 99m 높이의 수정안 제출시에는 내부적으로 “적자사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문화재 보호조례에 따르면 국가문화재에서 100m 이내의 건설사업은 문화재위의 심의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세운4구역은 종묘에서 140m가량 떨어져 있어 규정한 조례상으로는 심의대상이 아니다. 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종묘의 의미가 크고,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대단위 사업이기 때문에 조례상 예외에 해당돼 심의 대상이 된 것”이라며 “종묘와 세운상가처럼 큰 단위개발이 도심에서 흔치 않은 일이어서 문화재위원들이 더 강하게 규제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위는 사업반려와 함께 4개동 가운데 ‘종묘와 맞닿은 건물 높이를 55m까지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안을 함께 보냈다. SH공사 측은 “문화재청의 권고를 검토해 새로운 사업 계획안을 만들겠다.”는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서울시와 SH공사 모두 ‘적자사업’에 대한 부담을 떠안게 되면서 사업안 수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관계자는 “55m까지 낮추면 사업성이 전혀 없다.”면서 “SH공사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SH공사 관계자는 “SH공사가 도심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10년만인 데다 ‘공동주관사인 LH공사가 사업을 포기한 상황에서 왜 우리가 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많다.”고 전했다.
계획안이 계속 보류되면서 사업은 멈췄지만 세입자들 중 상당수가 맞은편 대체상가인 웅진스퀘어로 이주한 탓에 상권은 둘로 찢겼다. 세입자 대표 김동진(52)씨는 “442개 점포 중 100여개 정도가 웅진스퀘어로 옮겼다.”면서 “세운상가가 이미 없어진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고 토로했다. 시계도매상을 하는 기성도(64)씨는 “권리금을 1억 6000만원 주고 들어왔는데 보상금이 3000만원이다.”라면서 “사업시행 인가도 안 떨어졌는데 사람들만 빠져 나가 유령상가가 됐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세운4구역이 수정안을 제시해 문화재청의 심의를 통과하더라도 사업은 상당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수정안이 심의를 통과하면 교통, 환경 영향평가와 디자인 등 건축심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글 사진 박건형 이민영기자 kitsch@seoul.co.kr
2010-03-1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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