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07년 8월1일. 내일이면 연호가 광무에서 융희로 바뀌게 되는데, 당시 우리나라에 와있던 일본 사람들은 조선황실의 재정을 좀 더 여유있게 하고, 국고낭비를 막기 위해 조선보병대를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엉뚱하게도 이런 명분을 내세우는 바람에 조선보병대의 무장봉기가 일어나게 됐었잖아요. 희생자가 말도 못하게 많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날 밤 서울시내 곳곳에서 골목골목마다 대규모 검문이 펼쳐졌던 거죠.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곤당골 기생 국심이네 집으로 뛰어든 조선보병대원 한사람.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이 순간 기생 국심이는 그 부상병의 운명을 떠맡기로 결심을 했던 겁니다. 그 부상병을 다락에 숨겨줬거든요. 그 조선 보병대원,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기 때문에 난생 처음 보는 기생 국심이의 앞날이 너무 위험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심은 한사코 못 떠나게 말리면서 자기를 찾아온 술 손님들에겐 요즘 몸이 아파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다며. 이런 핑계로 대문을 걸어 잠근 뒤, 정성껏 부상병을 돌봐줬던 거죠. 그런데 그 부상병은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병대열에 끼어 대일 항쟁을 해야겠으니, 더 이상 나를 가로 막지 마십시오.”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던 겁니다. 그 뒤로 그 부상병은 단 한번도 기생 국심이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 부상병은 나라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일본군과 싸우고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곤당골 국심이네 집에선 그 뒤로 오랜 세월 동안 바깥 출입이 없었다는 거죠.
그 곤당골 기생 국심이.
국화꽃 향기 짙어가는 이 계절에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겁니다. 그 옛날 그런 여인들을.
<방송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