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지만 약한 생명의 모태
결혼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친정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엄마에게도 꿈많은 소녀, 아름다운 처녀 시절이 있었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로 살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범한 진리지만,30년 만에, 엄마의 일상과 닮은 삶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깊이 체감했다.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Leeum)’ 야외조각 공원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엄마(Maman,1999)’는 가슴에 소중한 알을 품은 암거미다. 첫 느낌은 공포다. 다리 8개를 사방으로 뻗은 거대한 몸집(9.27×8.91×10.23m) 때문에 가까이 가기에도 겁난다. 청동빛 근육을 흔들며 성큼성큼 다가와 덮칠 것만 같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다.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그녀는 가늘고 긴 다리로 균형을 잡고 서있다. 다리 끝이 뾰족해 바닥에 간신이 뿌리를 내린 듯하다. 강풍이라도 불면 ‘휙’ 쓰러질 것만 같다.
안쓰럽다. 그녀는 자식을 처음 품은 새내기 엄마다. 흰색 알을 강철 우리(cage)에 품고, 자신의 몸처럼 보호하는데도 불안 속에서 떨고 있다. 새끼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려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엄마의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걸어간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조각가다.90세가 넘은 고령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여성의 삶에,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일명 ‘거미 조각상’은 2000년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개관전에 출품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총 6개 작품 중에서 삼성미술관이 4번째 엄마와 4번째 거미(Spider·1996)를 지난해 6월부터 전시하고 있다. 거미의 크기는 3.38×6.68×6.32m로 엄마보다 작다. 작가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내성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유년시절의 기억을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과 불안, 연민이 쉼없이 교차한다. 강해 보이지만 상처받기 쉽고, 자식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암거미의 모습에서 친정엄마를 떠올린 이유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7-1-3 0: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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