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단계 거쳐야 ‘천년한지’ 나온다
한지는 ‘맛과 멋의 전통 도시’ 전북 전주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특산품이다.전주는 고려시대부터 한지의 명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전주한지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수백년 동안 빼놓을 수 없는 왕실 진상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외교문서로 사용될 만큼 빼어난 품질을 인정받았다.
전주한지가 오랜 시일 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비결은 한지에 배어 있는 장인정신이다. 국내산 닥나무를 손이 여러번 가는 고유의 제조법으로 가공해 매우 질기고 보존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닥나무 거두기-찌기-껍질벗기기-세척과 일광표백-티고르기-두드리기-종이뜨기-물빼기-말리기 등 10여단계를 거쳐야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전통한지가 탄생한다.
오랜 기간이 지나면 좀이 슬거나 바스라지는 서양 종이나 천보다 질겨 역사 자료나 외교문서는 전주한지에 기록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특히 자연적인 질감이 빼어나고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감이 가득해 서예지, 공예지, 창호지, 장판지, 영구 보존지 등으로 호평받고 있다. 전통 장인들의 손을 거쳐 빚어지는 은은한 윤기는 전주한지만의 특징이다.
전주에서 한지산업이 발달한 것은 물이 깨끗하고 철분 함유량이 적어 탈색이나 변색되지 않고 산화가 일어나지 않는 양질의 한지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부터 관아에서 전주 근교에 닥나무 밭을 가꾸도록 제도화했을 정도다.
한때 5만여개에 이르던 전국의 한지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전주시에는 아직도 10여개 업체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류·웰빙 바람을 타고 전통한지산업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전주한지의 명맥 잇기와 새로운 상품 개발은 대를 잇고 있는 천양제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최대 한지 제조회사인 천양제지는 전통한지생산에 그치지 않고 현대 감각에 맞는 응용한지, 친환경벽지에 이어 닥나무 성분을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 생산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 게스트룸과 유엔 한국 대표부를 전주 한지로 리모델링한 것도 이 회사다. 지난해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시장에도 진출했다. 최영재(45) 대표는 “한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거는 금줄부터 죽었을 때 입는 수의까지 우리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우리의 종이”라며 “이제 한지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한민족의 문화를 세계속에 꽃피우는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주시는 한지산업 육성을 위해 300억원을 투입, 77만㎡의 한지특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한지산업진흥원을 건립해 연구·인력양성·브랜드화 사업을 추진하고 팔복동 친환경첨단복합단지 3만㎡에 한지전용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다. 한지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상림동, 동서학동 주변에 대규모 닥나무 재배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한지는 자체 수요만 1000억원대를 넘고 일본 화지까지 포함할 경우 1조원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지를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한스타일 대표 상품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2010-02-27 2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