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일원본동 대모초등학교 원어민 강사… 강남구 일원본동 대모초등학교 원어민 강사 앰버 캠벨은 한국 학생들은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무조건 교과서를 외우려 하는 학습법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 22일 앰버가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부모(parents)’,‘테스트(test)’,‘암기(memorizing)’.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원어민 강사 3명이 공통적으로 짚어낸 키워드는 의외로 간단했다.
한국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특징이 우리 영어 교육의 방법과 초·중·고교생의 영어 실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에도 이견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 노력과 지력, 열정이 부족해서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구조가 영어를 어렵게 배우도록 한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또 우리 영어 교육의 목표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가문의 영광’위해 자녀교육에 헌신하는 한국 학부모
앰버 캠벨(Amber Campbell·27·대모초등학… 앰버 캠벨(Amber Campbell·27·대모초등학교 원어민 교사) ▲캐나다 브랜든 출생 ▲브랜든(Brandon)대 정치학 전공 ▲한국체류기간 6개월. |
강남 UC리버사이드 강사 제레미는 한국 학생들의 대부분이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억지로 공부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더 낯선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할 나이인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학비와 용돈을 받는 것은 물론 학원비까지 받으면서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과도하게 관심을 가지고 많은 돈을 자녀의 학원비로 지출하고 있지만 사실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면서 “차라리 몇년치 학원비를 모아 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학원 갈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영어마을 안산캠프 원어민 강사 셔먼은 한국의 학벌주의와 가족주의의 결합이 이런 사교육의 과열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모든 것을 헌신해서 자녀들의 교육에 투자한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과는 달리 조상을 공경하고 집안의 어른을 존중하며 부모가 자녀를, 형제와 자매가 서로를 보살피는 문화는 한국 학생들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 학생들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기 때문에 만 18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미국, 캐나다 학생들 보다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명문대에 진학해야만 이 사회에 주류를 이루는 파벌에 합류할 수 있고 집안에서 명문대생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가문의 영광’이 되기 때문에 온 가족이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내 아이는 더 나은 교육을 시켜 명문대에 진학시키겠다는 생각으로 경쟁적으로 이 학원 저 학원에 보내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이런 사회적 특징은 공부하는 학생들 간의 순수한 학문적 경쟁을 유도하지 못하고 결국 가족 대 가족의 재력 대결 구도를 만든다.”고 말했다.
●한 번의 테스트로 인생을 결정짓는 수능식 영어 교육
제레미 샌즈 (Jeremy Sands·28·강남 UC리… 제레미 샌즈 (Jeremy Sands·28·강남 UC리버사이드 강사)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샌프란시스코 주립대(Sanfrancisco State University) 정치학 전공 ▲한국체류기간 3년. |
셔먼은 “한국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만 15세부터 모든 교육 패턴이 변한다.”고 말했다. 단 한번의 수능 시험이 학생의 평생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오로지 수능 시험에만 매달린다. 앰버는 “이 테스트는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능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능 시험이 모든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순수하게 학문적 호기심에 따라 공부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참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원어민 강사들의 생각이다. 또 언어는 사용하는 도구가 돼야지 테스트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셔먼은 “한국의 영어 과목도 수능 시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교에 입학한 뒤에는 ‘죽은 영어’만 배우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영어권 국가들의 사회·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며 영어를 배우려하지 않고 또 그렇게 영어를 공부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때문에 학생들은 오로지 수능 시험에서 측정하는 영어 능력인 ‘읽기(Reading)’기술을 향상시키는데 매달리는 것이다.
●테스트를 위한 영어교육은 암기법만 가르친다
셔먼 테일러(Sherman Taylor·29·경기영어… 셔먼 테일러(Sherman Taylor·29·경기영어마을 안산캠프 강사) ▲미국 미시건 출생 ▲윌리암즈 밥티스트(Williams Baptist)대 사회학 전공 ▲한국체류 기간 7년·영어강사 경력 4년. |
앰버는 “한국 학생들은 매우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교재를 주면 이를 무조건 외우려드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과서를 외우면 내용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하겠지만 책의 내용을 조금만 변형시켜 질문하면 학생들은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암기 역기 중요한 공부 포인트이긴 하지만 암기만 해서는 언어를 배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제레미는 이런 암기 중심의 교육이 한국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국 학생들은 교사가 시키는 것은 잘하지만 혼자서 공부하는 능력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자유 주제를 주고 영어 발표를 시켜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대학생들은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컴퓨터 게임이 재미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영어 발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 능력이 미국의 중·고교생 수준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한 발음과 문장 구조를 갖추어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은 국제 무대에서 세계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며 “결국 대화의 깊이와 내용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창의력과 능동적인 공부 태도를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교육 논리는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돼
셔먼은 “한국 사회의 이 같은 교육 풍토는 영어권 국가의 원어민 교사들에게 돈 벌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할 뿐”이라고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 원어민 강사를 지원하는 미국인들에게 이제 한국은 ‘꿈의 나라’가 됐다. 원어민 강사들의 인성과 자질에 대한 검증 절차가 없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원어민이면 3∼4주 만에 한국에 와 바로 학원 강사로 설 수 있다. 또 그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공교육 보다 더 신뢰하고 있는 사설 학원의 영어교육이 사실 엉망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자격 미달의 강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태반인데도 학부모들은 사교육만이 공교육의 대안이라고 믿고 매달린다는 것이다.
제레미는 “한국 교육은 오로지 상자 속의 엘리트만을 키워왔지 상자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초·중·고교에 자질이 검증된 원어민 강사를 배치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앰버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영어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최근 늘고 있는 영어마을과 같은 교육 기관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셔먼은 “교육의 논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인기를 의식한 교육 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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