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하이서울페스티벌 서울 5일장’에 참여하러 덕수궁 돌담길에 나온 박만호(60)씨는 손수 만든 ‘얼레’를 시민들에게 선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30년 가까이 줄곧 얼레를 만들어온 박씨는 한국에서 유일한 ‘얼레 장인’이다.
●독습으로 익혀 ‘박사’의 경지까지
박씨가 얼레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27년 전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연 날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다. 그는 “남들은 연이 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날 따라 얼레만 눈에 띄었다.”면서 “그때만 해도 조악했던 얼레를 보면서 ‘내가 제대로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책을 찾아가며 얼레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는 사이, 박씨는 어느새 ‘얼레 박사’가 되어 있었다. 경기도 일산의 작은 공방에서 직접 나무를 사 자르고 다듬어 얼레를 만들기까지 모두 혼자 했다. 연 날리기 동호인들 중 얼레에 관해 궁금한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찾을 정도다.
●미국 잡지서 소개… 각국에도 알려져
1993년에는 미국 잡지인 ‘카이트 라인’에 실리면서 그의 유명세는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에게 연을 사러 한국까지 찾아오는 외국인도 하나 둘 생겼다. 프랑스에서 연 날리기 교실을 운영하던 다니엘은 한국에서 박씨에게 얼레를 선물받은 것을 인연으로 술과 담배가 담긴 소포를 박씨에게 여러 차례 보내왔다. 박씨는 “지난해 내 단골이었던 다니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면서 “멀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선물 한 보따리 사들고 찾아 오는 단골들을 만날 때 일에 대한 큰 보람을 느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국내외 연 동호인들이 목공소에서 얼레를 마련할 수 있는데도 굳이 박씨를 찾아 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박씨만의 장인정신이 얼레에서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나무를 자른 뒤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자연 건조시켜 기름칠을 합니다. 완전히 건조되지 않으면 나중에 나무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줄어들게 되고, 결국 얼레의 모양이 틀어집니다.”
박씨는 사용자의 몸무게에 따라서 다른 얼레를 만들어 준다.70㎏의 남성은 700g 정도 나가는 얼레를 사용하면 적당하고, 가벼운 사람일수록 더 가벼운 얼레를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초보자들은 사각 얼레를, 숙련자들은 팔각 얼레를 사용하는 등 보통 사람들은 숙련도에 따라 얼레의 ‘모양’만 선택하지만, 사실은 몸무게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몸무게에 맞는 얼레를 사용해야 어깨에 부담을 주지 않고 얼레를 잘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계 유지도 힘들지만 전통 기술 이어갈 터”
이렇게 공을 들여 박씨가 만드는 얼레는 한 해 200여개 정도지만 판매량은 그에 못 미친다. 개인에게서 주문받아 판매하거나 연 날리기 행사를 하는 단체나 연을 파는 업체에 납품하지만, 날이 갈수록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요즘 들어서는 생계를 잇기도 어려울 정도로 얼레를 찾는 사람이 줄어 솔직히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하면서 “기사에 전화번호(018-284-8048)를 꼭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얼레에는 한국인의 과학적인 지혜가 숨어있는 만큼 앞으로도 이 기술을 발전·계승시켜 나가고 싶다.”면서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질수록 정부에서 연 날리기 대회를 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이어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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