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활짝 웃으세요 마음을 찍어 드릴게요”
“할아버지 화나신 분 같아요. 사진이 잘 나오려면 장가가실 때처럼 활짝 웃으셔야 해요.”29일 오후 영등포구청 지하에 마련된 영정사진 촬영장. 카메라 앞에 앉은 김해식(79)할아버지와 일일 사진사로 나선 학생 사이에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진다. 자손들에게 남길 마지막 사진이란 생각에서인지 할아버지의 긴장된 얼굴이 잘 펴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렇게?”
“아니 좀 더 웃으세요.”
“학생. 난 장가갈 때도 안 웃었어. 원래 생겨 먹은 게 그러니까 그냥 찍어.”난데없이 미소 짓기가 어색하고 머쓱한 탓도 있다. 결국 할아버지는 촬영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서야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활짝 폈다.
●봉사활동 하러 충남 당진까지
한강미디어고 영상동아리 ‘불끈’ 소속 학생들은 28일과 29일 영등포구청에서 노인들을 위한 영정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지역 노인들을 위해 학생들은 이틀간 200명이 넘는 노인들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촬영한 사진은 얼굴에 난 잡티 등을 제거해 주는 보정 작업을 거쳐 노인들에게 액자로 전달된다. 학생들이 이렇듯 어르신들에게 영정사진 찍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즐겨할 수 있는 사진으로 남을 위한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학생의 반응도 노인들의 호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이날 구청을 찾은 최정숙(72) 할머니는 “손자 손녀 같은 아이들이 찍어주니까 (영정)사진도 기분 좋게 찍을 수 있었다.”면서 “보기엔 아기같기만 한데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 근처인 양평동 주변 노인을 위한 사진 봉사를 시작으로 충남 당진군 영전마을까지 외연을 조금씩 넓혀 나갔다. 그사이 아이들도 차츰 변해 나갔다.
●영등포구 400만원 등 도움 이어져
오용준(19)군은 “시골 마을을 찾았을 때 눈이 안 보이는 한 할머니가 영정 사진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찾아오신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하고 바래다드리는 길 내내 남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그후 봉사에 빠질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봉사하면서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났다고 학교 선생님들도 입을 모았다.
학생들의 모습에 구청과 어른들도 도와주겠다며 팔을 걷었다. 영등포구는 400만원 예산을 책정해 ‘액자 만들기’를 지원하는 한편 장소제공과 노인들의 섭외 등 잡일을 도맡아 줬다. 시장 한복집 아주머니는 할머니들을 위한 새 한복을 빌려줬고 한 제과업체 사장님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어르신들이 먹을 간식을 후원했다.
3년째 사진 봉사를 해온 조혜림(19)양은 “작고 어렵지 않은 일을 해드린 건데 받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해 오히려 미안스러울 정도”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미소를 카메라가 아닌 마음에 담을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2008-5-30 0:0:0 1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