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명물 일제때 지은 금양제빙 건물 등 잇따라 철거...문화재로 지정, 매입 시급
부산의 대표 수산시장인 자갈치 시장에서 80년이 넘은 ‘심장’ 같은 근대 건축물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부터 존속해온 연면적 4500㎡, 5층 규모의 금양제빙 건물은 남항과 자갈치 시장 일대의 유일한 근대식 건물이었다.
건물 3층에서 자갈치 시장 난전을 가로질러 물양장까지 얼음이 옮겨지는 약 10m의 철제통로가 유명했던 이 건물은 제조된 얼음을 시장 곳곳에 보내 수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심장’ 같은 역할을 해왔다.
소유주가 바뀌고 1962년 신축과 증축을 거듭하면서도 수십년간 자리를 지킨 이 건물이 한 달 전 돌연 철거됐다.
금양제빙 건물은 2005년과 2012년 부산시가 조사한 근대 건조물 현황에서 산업시설 부문에 등재될 정도로 근대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근대 건조물 D등급을 받아 건축 대장 작성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지만 금양제빙 건물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건물이 헐린 자리에는 단층짜리 ‘ㄷ’자 모양의 상가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금양제빙이 철거되는 것을 지켜본 상인 김모(62·여)씨는 “생선을 취급하는 자갈치 시장에서 얼음을 공급해주는 제빙소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며 “자갈치 시장의 한 시대가 지나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금양제빙 건물같이 하루아침에 철거되는 부산의 근대 건축물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6·25전쟁 피란 시절부터 영도다리와 함께 실향민에게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점집이 모인 점바치 골목도 올해 자갈치 시장 연안정비사업으로 대부분 철거된 상태다.
광복 후 재외동포의 귀환 장소, 월남 파병 등의 추억이 서린 부산항 북항 1부두도 북항 재개발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낙후됐던 원도심 활성화가 이뤄지면서 개발논리에 밀려 근대 건축물이 헐리고 상업시설로 바뀌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지역 학계에서는 최근 10년간 보존 가치가 있는 근대 건조물 100여 개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부산시가 기본 현황을 파악한 근대 건조물 198개 가운데 철거가 불가능한 문화재(등록·지정)는 10%도 안 되는 17개에 불과해 우선 순위를 정해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매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이어 “군산과 대구가 근대 건축물을 관광자원화하는 것과 달리 부산시의 노력은 미미하다”며 “아직 찾지 못한 근대 건축물의 기초 조사부터 다시 시작하고 철거 위기의 급한 건축물부터 매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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