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필요한 사람들 위해서 염색·파마 않고 길러 기부하죠”
“처음 봉사를 할 때는 남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는 생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봉사와 기부에 대한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제 전 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봉사합니다.”남지선(41) 서울고용노동청 실업급여과 주무관은 10일 인터뷰에서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러곤 평생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조차 미개한 토착민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보다 우월적 위치에서 계도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비판적 평가를 우연히 접한 뒤 마음속의 큰 울림을 느꼈다”며 “나도 취약계층의 옆이 아닌 위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더욱 마음을 다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2010년부터 그가 공무원 입직과 동시에 선택한 것은 ‘머리카락 기부’다. 그 전에는 직업훈련기관 등에서 일하며 검정고시 준비생들에게 수학 강의 봉사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명(無名)의 선행’인 머리카락 기부를 접하게 됐다. 그날로 당장 파마와 염색을 중단했다. 기부하는 머리카락은 주로 소아암 환자가 사용하기 때문에 약품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는 2년 6개월마다 곱게 기른 머리카락을 잘라 경기 고양시의 복지단체 ‘날개달기운동본부’로 보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누가 사용하는지, 어떻게 쓰이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수년간 기른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자를 때면 속상해 눈물까지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미용 이상의 가치로 인식되지만 그는 오히려 “기부할 때마다 행복하고 날아갈 듯 기쁘다”고 표현했다.
남 주무관이 머리카락 기부를 한다는 사실을 주변에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최근 고용노동부 소식지에 우연히 사례가 소개돼 ‘몰래 기부’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보통 봉사나 기부에 대해 ‘시간을 내기 어렵다’, ‘여유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데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한다고 마음을 바꾸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며 “더 많은 이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동참해 줬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2016-08-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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