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은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것 외에도 1910년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했고 1926년엔 ‘님의 침묵’을 펴 냈다.1927년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결성에 참여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3·1운동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성북동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1933년 땅을 매입하고 지은 집으로 심우장이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우장의 가장 큰 특징은 북향인 점. 한용운은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과 마주치기 싫어 북쪽을 향해 집을 지었다. 하지만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8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심우장에서는 해설가의 도움으로 심우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