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민간 주도 순환정비’ 순항
기부채납 방식 준공… 지난달 입주
“샤워·빨래 할 수 있어 매일 행복”
오세훈 “약자와의 동행 주거공간”
“10년 전 남대문 양동 쪽방촌(양동구역 제11·12지구)에 왔을 때는 겨울에 주전자에 물을 데워서 며칠에 한 번씩 머리를 감으며 지냈습니다. 이제는 잠자리에서 다섯 발짝만 걸으면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고, 세 발짝을 가면 샤워와 빨래도 할 수 있으니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서울 중구 공공임대주택 ‘해든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임재열(70)씨는 14일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서울시 최초로 주민들이 이주한 뒤 쪽방촌을 철거하는 ‘민간 주도 순환정비’ 방식의 첫 사례다. 선(先)이주·선(善)순환을 통해 서울시정 철학인 ‘약자와의 동행’을 실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2021년 정비계획이 결정되고 기부채납 방식으로 4년 만에 준공됐다. 노후된 3.3㎡(1평) 남짓 단칸방에서 살던 일대 쪽방촌 주민 172명 중 145명(142세대)이 지난달 입주를 마쳤다.
‘해가 드는 집, 희망이 스며드는 집’이라는 뜻의 해든집은 전체 건물 18층 중 6~18층에 있다. 전용 14.21㎡와 20.71㎡ 크기 총 182세대에는 세탁기, 시스템 에어컨, 화재 감지기, 자동환기 시스템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일부 세대는 문턱을 낮추고 화장실을 넓혀 휠체어 이용자도 편히 지내도록 설계됐다.
지하 3층부터 지상 5층에서는 의료 지원이나 생활 상담 등을 제공하는 남대문쪽방상담소, 경로당, 각종 커뮤니티 시설 등을 갖춘 사회복지시설 ‘해든센터’가 운영된다. 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지하 2층 공동작업장에서 일을 하거나 1층 빨래방에서 인근보다 저렴한 가격에 빨래도 할 수 있다.
이날도 주민 8명은 공유주방 ‘모두의 주방’에서 샌드위치 만들기를 배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직접 주방과 보금자리들을 둘러본 뒤 입주민들을 축하했다. iM사회공헌재단과 이마트 노브랜드 관계자들도 주방용품, 휴지, 세탁세제 등 생필품을 전달했다.
시 관계자는 “선이주·선순환 방식은 추가 비용이 들고 정비 기간이 길어지지만, 사회적 약자를 고려해 영등포쪽방촌도 유사한 방식으로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해든집은 강제 퇴거 없는 약자와의 동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라며 “도시의 성장 속에서도 소외되는 이웃이 없도록, 누구에게나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