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때가 그나마 걱정이 덜했습니다.” 서울 미아사거리에서 드림랜드를 지나 한천로에 이르는 2㎞ 구간에 몰려 있는 5개 주유소는 올 들어 지속됐던 고유가 행진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가격 경쟁을 펼쳤다.서울 도심 주유소의 경유값보다 ℓ당 150원가량 싸게 파는 ‘제살깎기’식 경쟁으로 소비자들을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했다.<서울 in Seoul 6월 8일자 4면 참고> 그러나 기름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요즘 이들 주유소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다른 지역 주유소보다 기름값을 낮추는 폭이 더욱 클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어깨를 누르기 때문이다.기름값 할인경쟁의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13일 ‘최저 가격 판매’라는 현수막을 내걸… 13일 ‘최저 가격 판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휘발유를 ℓ당 1339원에 판매하고 있는 LG정유 월계주유소.월계로변 주유소들의 가격 경쟁이 경유에서 휘발유로 번지는 양상이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원정 차량까지 몰려 문전성시
지난 몇 달간 이곳 주유소들은 경유를 중심으로 가격 할인경쟁이 이어지면서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소문을 듣고 달려온 ‘원정 차량’까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기름값 할인을 주도했던 에쓰오일 동방주유소는 주유 차량이 하루 평균 300여대에서 800여대로 3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최성락 소장은 “주유 공간이 협소하고 오르막에 위치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격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면서 “가격에 민감한 영업용 차량이 많아 손님이 줄어들면 할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두번째 주자’였던 LG정유 월계주유소도 이전보다 2배 이상 많은 1200∼1300대가 몰려들었다.반면 SK㈜ 직영점인 드림랜드주유소는 과거의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100여대의 차량이 이곳을 찾다가 운영진이 교체된 6월 이후 가격 인하에 나서면서 400여대 수준을 회복했다.
이처럼 이들 주유소는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지만,마진 폭은 줄고 직원 수는 늘어 이윤은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게 중론이다.때문에 최근 두세 달 동안은 ‘저가 물량 공세’ 대신 매일매일 인접 주유소의 기름값을 확인한 뒤 판매가를 책정하는 ‘눈치 경쟁’을 벌였다.
서범승 드램랜드주유소장은 “최근 주유 차량이 20∼30% 정도 빠졌다.”면서 “기름값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그동안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게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지난 9일 현재 이들 주유소의 경유 가격은 ℓ당 959원으로 서울시내 최저 수준이다.
●얼마를 내려야 하나…
이달 들어서는 주유소간 경쟁이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경유에 국한됐던 기름값 인하경쟁이 휘발유로 번지고 있기 때문.
월계주유소는 최근 경유값 대신 휘발유값을 낮게 책정하는 전략으로 바꿨다.지난 9일 현재 이곳의 휘발유값은 ℓ당 1339원으로 인근 주유소보다는 20∼40원,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50∼100원 정도 싸다.강성한 소장은 “눈치 보느라 경유값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 휘발유 차량에 대한 유인책을 쓰는 편이 낫다.”면서 “하지만 인근 주유소들도 휘발유 가격 인하에 나설 경우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여기에 국제 원유가 안정에 따른 정유사 공급가격 인하도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주유소 소장들은 “기름값이 오르는 추세에서는 따라가는 위치였지만,이제는 정반대 입장에 놓이게 됐다.”면서 “손님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면 다른 지역 주유소보다 인하 폭이 커야 할텐데,얼마를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어쨌거나 이같은 고민이 소비자들에게는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능동길변 주유소도 유가할인 ‘전면전’ 돌입
천호대로와 도심을 연결하는 광장동∼능동∼장안평 구간의 15개 안팎의 주유소들도 ‘에쓰오일 능동주유소’를 진원지로 한 가격 할인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주유소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식 선택일 수 있지만,소비자들은 ‘손 안 대고 코 풀기’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장안평에서 광장동까지 이어지는 천호대로 강남방향에는 10곳이 넘는 주유소가 밀집해 있다.도로 맞은편 주유소까지 포함하면 15곳 정도 된다.
이른바 ‘적정가’를 유지해 오던 이곳에 ‘저가 바람’을 몰고 온 곳은 에쓰오일 능동주유소.지난 9일 현재 ℓ당 휘발유 1355원,경유 937원 등이지만 주유소 보너스카드를 사용할 경우 ℓ당 휘발유는 1302원,경유는 902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이는 인근 주유소보다 30∼150원 가량 싼 가격이다.
서현돈 소장은 “시설 개·보수공사를 끝마치고 지난 6월 재개장한 뒤 단골 손님들의 끊어진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저가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앞으로도 낮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판매전략 탓에 이곳을 찾는 차량은 하루 평균 1800∼2000대에 달한다.24시간 운영되지만,차량 운행이 뜸한 새벽시간대를 제외할 경우 시간당 100대가 넘는 차량이 이곳을 찾고 있는 셈이다.까닭에 고용하고 있는 직원 수만 40명에 이른다.
따라서 인근 주유소들이 능동주유소에 보내는 시선은 곱지 않다.그러나 갈수록 줄어드는 손님 때문에 차츰 기름값을 인하하는 추세다.지금은 능동주유소와 가까울수록 기름값이 조금씩 낮아지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최근 정유사에서 공급하는 공장도가격이 떨어지면서 이 일대 주유소들의 본격적인 가격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서울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길목이라 기름값에 민감한 영업용 차량이 많은 편”이라면서 “이윤이 줄더라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