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동 40년만 최악의 가뭄…기후변화가 주 원인기상청, 7월에나 해갈될 것으로 전망
한반도 중부와 북부지역이 극심한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타들어가는 논 가뭄이 심한 중부지방의 올해 장마가 예년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도 포천시 자일리 갈라진 논의 모습. 연합뉴스 |
전문가들은 가뭄의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꼽는다. 한반도가 124년만의 대가뭄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강원 영동 최악 가뭄…작년 강수량 부족으로 물부족 심화
16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서울, 경기와 강원도의 누적 강수량은 평년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이다.
이 기간 서울·경기의 강수량은 161.5㎜로 평년의 55% 수준이며 강원 영서는 64%인 189.4㎜, 영동은 평년 대비 39%에 불과한 141.9mm다.
특히 속초와 강릉의 강수량은 각각 139.8㎜와 144.0㎜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가장 적은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지역특성상 원래 겨울과 봄에는 강수량이 적고 건조하지만 올해는 특히 눈·비가 적었다”며 “작년부터 가물었기에 가뭄이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1월과 2월에는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는 바람에 서울·경기를 비롯한 중부지방에는 눈이 적게 왔다.
특히 동해안 지방에는 예년보다 동풍이 약하게 불어 적설량이 매우 적었고 봄철에도 중부지방은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 강수량이 적었다.
남쪽 지방은 어느 정도 비가 내렸지만 수증기가 소백산맥을 넘지 못해 남쪽에만 비를 뿌리는 ‘비그늘 효과’가 발생해 중부 지역의 목마름이 더욱 심했다.
◇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대가뭄 주기’ 진입 분석도
학계에서는 이같은 가뭄에 대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꼽는 데 거의 이견이 없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2012년 심한 가뭄을 포함해 최근 가뭄이 반복하고 있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면서도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바뀌는 과정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환절기인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봄과 여름철 기후는 아열대성으로 바뀌는 등 기후가 변화하면서 가뭄을 포함한 극단적인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후는 여름에는 아열대성 기후가, 겨울에는 중위도 기후가 혼재하고 있는 상태”라며 “기후계가 바뀌고 있어 가뭄뿐만 아니라 집중호우, 태풍, 열파, 한파 등 극단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원태 한국기후변화학회장은 “우리나라 주변의 고기압이 오랫동안 정체해 있으면서 저기압이 중부지방까지 올라오지 못해 작년부터 비가 적은 상태가 오래돼 가뭄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권 회장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뭄의 빈도가 높아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번 가뭄이 들었을 때 그 정도가 심해질 수는 있다”며 “건조하고 고온인 상태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태양에너지가 땅에 도달했을 때 수증기가 더 빨리 증발해 가물어지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만으로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가뭄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한반도가 128년 만에 극심한 대가뭄 주기를 맞았다는 ‘주기설’도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을 보면 대략 5개의 가뭄 주기가 나오는데, 지금은 38년 주기인 ‘대 가뭄기’에 들어온 동시에 124년 주기인 ‘극대 가뭄기’의 시작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변 교수는 “2013년 8월 11일부터 계속 비가 적게 왔는데, 이 추이가 계속된다면 이번 장마철에도 작년처럼 비가 아주 적게 오고 가뭄이 심화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상청 “7월 해갈”…전문가들 “가뭄 지속…장기적 대책 필요”
기상청은 올해는 예년보다 약간 늦은 7월 초 중부지방에 장마전선이 올라와 비를 뿌려 어느 정도 해갈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비가 오기는 했지만 해갈이 되려면 최소 50∼100㎜ 더 와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 강수량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중부지방이 장마 전선의 영향을 받을 7월 초가 지나면 어느 정도 해갈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마가 찾아오면서 당장 가뭄은 해결되더라도 한반도가 점차 가물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허창회 교수는 “올해 가뭄과 폭염을 비롯해 최근 한반도의 기후 변화를 볼 때 당장 내년에도 고온 현상이 지속하고 가뭄과 집중호우가 계속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뭄에 대한 더욱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최승일 교수는 이제는 대증적인 해법이 아닌 장기적인 가뭄 대책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정부는 농림식품부나 환경부 등 부처에 따라 나름대로 가뭄 대책을 가지고 있지만 단기적인 대책에 불과하다”며 “만약 올해 여름과 가을에 마른 장마와 마른 태풍이 오면 내년에는 더 심각한 가뭄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 국토는 남북으로 길이가 400㎞에 불과하다”며 “가뭄 지역 주변 수원을 개발하는 현재의 단기 대책에서 탈피해 상대적으로 수자원이 풍부한 다른 지역의 물을 옮겨서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최 교수는 또 “우리나라는 상수도 요금이 워낙 저렴해 재처리수 사용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앞으로 이런 극심한 가뭄에 대비해 하수 재활용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원태 회장은 “앞으로 한반도가 단순히 더 가물어지리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온난화로 온도가 계속해서 상승하는 가운데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을 좀 더 심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온도 변화 등에 따라 중부 지방에서 재배해오던 농작물의 종류를 바꾸는 것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희룡 교수도 “물을 저장하고 통제할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며, 허창회 교수는 “비가 오지 않는 가뭄 시기를 이용해 빗물 저장소나 댐, 저수지 등을 정비하고 운용해 가뭄에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